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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컬럼]

  • 코리안저널
  • 조회 130
  • 2019.01.04 07:42
행복은 인류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며 숙원이다. 만일 행복이라는 단어를 빼버린다면, 인간의 존재 의미와 가치와 목적은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며 동물과 조금도 다름 없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행복을 추구하며 멀고도 험한 길을 지칠 줄 모르고 언제나 변함 없이 행복이라는 한 우물을 파며 한 길을 달려간다. 길은 있으나 끝이 없는 야심 찬 인생 가도! 미지의 세계로 향한 인류의 끝 없는 도전! 그 발걸음은 결코 멈추지 않고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없이 계속 될 것이다. 에베레스트산 보다 훨씬 더 높고 험한 산일지라도, 꿈에만 그리던 달나라 보다 더 먼 곳일지라도, 바다 보다 더 깊은 곳일지라도, 반도체 산업을 일궈 낸 심오한 첨단 과학보다 더 놀라운 인간 지능의 최정상에도... 발 길 닿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지 뛰어들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극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을 누비며 어디든 파고 들 것이다. 그들은 끝내 수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세상에 감추어진 무궁무진한 보화를 캐 내어 자기 소유로 만들 때까지 좀처럼 포기하지 않고 진한 땀과 피를 쏟으며 끊임없이 도전장을 보낼 것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단어들, ‘꿈, 욕망, 야망, 이상, 희망, 소망, 비전’, 등 등은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며 뭉클해진다. 우리는 이처럼 아름다운 단어들을 삶의 현장에 초대하여 그것을 좌우명처럼 기억 속에 고이 새겨 두고 기분좋게 산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환희,기쁨, 즐거움, 감격, 성취, 만족, 영광 등 지극히 아름답고 눈부신 단어들로 미래를 단장하면서 그것을 뭉뚱그려진 말 한 마디로 ‘행복’이라고 부른다. 행복은 ‘더 이상 부족함이 없고 바랄 것 없는 만족할 만한 상태’를 말한다. 오직 그 행복을 위하여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권세 등을 찾아 안간힘을 다 쓴다. 
알고 보면 그 모든 것들은 행복의 대명사도 아니며 행복의 절대 조건도 아닌 부속품들이다. 그 행복은 소나기가 지나간 뒤에 보기 좋게 포물선을 그리며 하늘에 나타나는 무지개나, 우주의 신비, 그 극치를 내 보이는 오로라(aurora)와 같은 눈부신 광채! 그것과도 견줄 수 없는 찬란하고 황홀한 빛을 발산한다. 행복은 바로 그런 것이다.시대의 흐름에 따라 행복 관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불과 반 세기 전만해도 삐까삐까한 세단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 늘늘이 기와집 한 채 쯤 가지고 있는 사람, 백 석 부자, 많은 사람들 앞에 큰 소리 치며 사는 사람, 일류 대학을 나와 남 보란 듯이 좋은 직장을 가지고 당당하게 사는 사람만 보면 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대판 행복관은 그 옛 날의 행복관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자가용 비행기, 하늘 높이 치솟은 웅대한 빌딩의 소유자, 세계 10대 그룹에 오를 만한 재벌가, ...그 쯤 되어야 만족할 만큼 행복관이 달라졌다.여기서 집고 넘어가야 할 중대한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고 해서 내가 그와 똑같은 자라에 올라 선다 해도 동일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욕망 앞에는 만족이란 단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원점을 맴돌며 뜬 구름 잡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다,
푸쉬킨은 ‘행복’이라는 시 속에 “행복을 찾아 문 밖에 나서서 온 종일토록 산으로 들로 헤매어 보았지만 , 찾고자 하는 행복은 끝내 찾지 못하고 지쳐서 허탈한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보니 그토록 찾던 행복이 처마 밑에 대롱 대롱 매달려 있더라” 고 했다. 
그렇다 행복은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런데 유사 이래 어느 누가 세상을 다 살고 가는 길에 “나는 행복 했노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긴 사람이 있었던가! 그 말 대신 미련과 후회만 잔뜩 쏟아 놓고 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으며 누가 찾아 누릴 수 있단 말인가! 그 해답은 우리들의 마음 속에 숨어 있다. 가장 귀한 것일수록 가장 은밀한 곳에 감추어져 있듯이. 행복은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자아의 존귀함을 찾는 그 순간부터 그에게 다가와 속삭일 것이다. 적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이 가장 행복한 조건이라는 것, 그것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지금 함께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 적어도 자연의 섭리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자기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존귀함을 아는 사람. 그리고 잠시 살고 가는 인생이 자기에게 얼마나 행복한 절호의 기회인가를 아는 자에게 다가올 것이다. 
지극히 가련한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와 부유한 수전노의 이야기가 있다. 구두 수선공 할아버지는 비록 가련해 보이지만 하루 하루를 아래 층에서 항상 즐겁게 노래하며 사는데, 배 부른 건물 주인, 수전노는 새벽 꼭대기에 달 보고 나가서 밤 늦게 달 보고 들어와 밤잠도 설치며 늦도록 돈 자루를 풀어 놓고 돈을 헤아리며 살았다. 어느 날 수전노는 구두 수선공에게 찾아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즐겁게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구두 수선공의 대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나에게는 욕심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고 모든 것이 감사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행복할까? 부질 없는 욕망의 쇠사슬에 묶인 채 질질 끌려가는 욕망의 노예에게는 만족감이나 어떤 기쁨도 맛볼 수 없다. 특히 진주를 땅 속에 묻어 놓듯, 자신을 세상에 방치하고 멸시 천대하며 사는 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모난 정 맞춰가며 알콩달콩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비롯된다. 비교는 행복의 금물이다. 그것은 불치병처럼 인간의 마음 속에 파고 들어와 행복을 땅에 떨어뜨려 짓밟아 버린다. 그렇다 인도의 간디 수상은 말하기를 죽음에 이르는 병은 <절망>이라 했다. 
행복은 우리에게 항상 소망의 등불이다. 모방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만들며 살 때 행복은 우리와 함께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피우며 향기를 풍길 것이다. 인생은 멋진 예술이다. 그리고 누구나 행복을 찾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 행복을 추구하는 자들은 언제나 행복은 모방이 아니라 창작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재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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