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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자녀 교육, 근무 환경 등 모든 것이 다 힘들다

  • 코리안저널
  • 조회 1169
  • 2014.12.13 00:09
우리와 똑같이 어려운 해외 공관원들,“결코 특권층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던 반드시 만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국적의 외교관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알고 또 이해하고 있을까. 혹시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불친절했던 것만 생각하고, 우리와는 마치 다른 종족인 것처럼 제쳐두었던 적은 없었는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외교관은 우선 겉보기로만 판단하면 고급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항시 정장 차림의 그들은 여러 나라의 근무지를 옮겨 다니는 덕에 견문도 넓고, 어느 나라이건 좋은 환경에서 근무할 것이란 선입견이 먼저 들어오기 때문이다. 또한 대개는 영어(또는 근무하는 현지어)를 잘하고 파티에 자주 나가는 화려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춰진 그들만의 고충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고충을 안고 살아가는 외교관들이 결코 ‘힘들다!’는 표현을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도 있다. 주재원 상사나 지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연상하면 조금 이해가 될까?
외교관들이 가장 고충으로 호소하는 첫 번째가 자녀교육이라고 한다. “자녀에게 일관성 있는 교육을 못 시키는 이유가 있는데, 몇 년에 한 번씩 나라를 바꿔야 하는 점 때문이다”, “아이들이 정붙일 친구를 사귈 즈음에 그 나라에 취미가 당길만하게 되는데, 그러자마자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된다”는 등등의 하소연이 납득이 간다. 
그런 과정을 거쳐 본국에 돌아온다 해도 과연 자녀가 받는 입학 특혜가 도움이 될까. 그러한 조건은 결코 교육환경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는 않는다. 공부하는 동안 주위로부터 선망의 대상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정작 자녀 본인들은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비교해 많이 얼떠 있게 되고 금방 그런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학교 안팎의 친구들에게 여러모로 놀림당하기가 일쑤다. 수업도 영어 말고는 모든 과목들이 곧 뒤처지고 힘들어 하게 된다.
소위‘현대판 국제 집시’
외교관 자녀들은 해외에서 교육을 받는 동안 이중 언어, 간혹은 3중언어자까지 된다. 개인의 습득 능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중 문화의 체득으로 세계화 시대가 요구하는 적합한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중이떠중이처럼 제대로 된 습득에 실패할 경우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지 못 하는 주변인간(Marginal being, 또는 lost culture)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교육학자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리스만(D. Riesman) 교수는 “어려서 다문화를 경험하면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Conformity to a novel situation)이 생긴다”고 했다. 사고의 영역이 단일 문화사회에서 성장한 인간보다는 다문화 사회에서 얻어지는 것이 더 풍부하고 넓어진다는 상례를 단정하는 말일 것이다. 외교관들이 자녀들의 이러한 환경이 주는 사실에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자녀들에게 교육환경의 일관성을 보장해주기 위해 간혹 근무했던 현지에 자녀를 놓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 어머니가 그 곳에 같이 남게 된다. 결국 아내와 가정이 없는 기러기 아빠는 국제이산가족의 가장으로 타국 사회생활에서 여러 가지로 불리한 제약을 받게 된다. 떠돌이 생활의 불안정한 특성도 외면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농경민족이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대를 물리면서 고향을 지켜온 민족이다.
언제든지 다음 장소를 향해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 외교관들은 변변한 가구도 마련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마음을 터놓고 지낼 친구도 만들 수가 없는, 소위 ‘현대판 국제 집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귀국할 때 외교관에게도 이제는 세금을 물리게 법이 적용돼 “자동차나 피아노, 값진 외제 가구를 들여와 이득을 챙겼다”는 얘기는 아주 먼 옛날 얘기가 되었다. 부임해가는 근무지의 운도 중요할 것이다. 1급 지로 불리는 선진국은 숫자가 한정돼 있어 우리나라보다 훨씬 열악한 후진국에 발령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아무리 그 나라로부터 대우를 잘 받고 또 일하는 사람을 두고 산다 해도 나라 환경이 불편하고 사회가 불안한 점까지는 극복하지 못할 성싶다. 평소의 수준을 지켜줄 문화생활이 우선 불가능할 것이고 “아이들이 밖에 나가면 안전할까”, “혹시 전염병이라도 옮을까” 걱정하고 산다면 고급 귀양살이나 다름없지 않을 듯싶다.
 이외에도 적은 숫자의 공관원끼리 경쟁하며 공존해야 하는 문제도 있지 않을까. 그들은 ‘공관’이라는 아주 작은 틀 안에서 살아야 한다. 현지에 위치한 작은 한국에서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외교관들의 실체다.
우리는 가끔 “공관원이 자기를 무시했다”고 흥분하는 이웃들을 본다. 공관원 측의 잘못도 있겠지만, 자기 자신이 관존민비의 강박관념이나 선입관을 갖고 있어 빚어진 오해는 아닌가도 생각해봐야 한다. 외교관, 그 중에 해외 공관원은 결코 특권층이 아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라고 생각해보자. 그런 생각의 출발이 곧 그들과의 거리감을 많이 좁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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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운용
공감 가는 글 잘 읽었으며 힘이 나네요!
오운용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