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윤의 중년 산책] 아직 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1 PaulYoon Column 1](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10/PaulYoon-Column-1-1024x853.jpg)
어느 날 밤이었다. 모두 잠든 늦은 시간, 불을 끄고 혼자 거실에 앉아 있었다. TV도 꺼져 있었고, 가끔 창밖으로 지나가는 자동차 불빛만 천장을 스쳐 갔다. 세상은 조용한데 이상하게 내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어릴 때는 인생이 아주 긴 줄 알았다. 스무 살에는 마흔이 까마득하게 느껴졌고, 젊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낯선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눈가에는 주름이 생겼고 머리에는 흰머리가 늘었다. 마음속의 나는 아직도 젊은 날 어느 곳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거울 속의 나는 어느새 많은 세월을 지나와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꿈이 많았다.
열심히 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곁에 있을 줄 알았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세상을 이야기하던 시절에는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끝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세월은 생각보다 빨랐다.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부모님은 늙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내 곁을 떠났다. 이루지 못한 꿈들도 하나둘 마음속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살아보니 열심히 한다고 모든 일이 잘되는 것도 아니었고, 진심을 준다고 언제나 진심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힘든 날도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는 웃었다. “잘 지내시죠?”
누군가 물으면 늘 같은 대답을 했다. “그럼. 잘 지내지.”
하지만 누구에게나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마음속의 방 하나쯤은 있는 것 같다. 그곳에는 포기했던 꿈도 있고, 떠나간 사람도 있고, 미처 하지 못했던 말도 있다.
그날 밤, 나도 그 방 안에 오래 머물렀다. 잘했던 일보다 후회되는 일들이 먼저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인생에는 ‘다음에’가 없는 순간도 있다는 것을. 그러다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아무 걱정 없이 뛰어다니던 그 아이에게 마음속으로 물어보았다.
‘네가 꿈꾸던 사람이 지금의 나였니?’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인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돌아보니 잃어버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힘든 순간을 지나면서도 여기까지 왔다. 실패도 했고 상처도 받았다. 때로는 길을 잃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길을 찾아 걸었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그제야 지금의 내가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동안 나 자신에게 너무 인색했다. 남들에게는 쉽게 “괜찮아”라고 말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나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다.
그런데 그 한마디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참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나 자신에게 해주는 말이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어느새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밤새 세상을 덮고 있던 어둠 사이로 희미한 새벽빛이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다.
인생도 어쩌면 저 새벽과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지나고 나면 어느새 과거가 되어 있다. 젊었을 때는 성공해야 행복한 줄 알았다. 무언가를 이루어야 잘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잘 산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을 받아들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쁜 날도 내 인생이고, 후회되는 날도 내 인생이다. 사랑했던 사람도, 떠나보낸 사람도, 이루었던 꿈도, 이루지 못했던 꿈도 모두 내 삶의 한 부분이다. 그 모든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언젠가 정말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온다면,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이 사랑했고, 많이 아팠고,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그 정도면 괜찮은 인생이 아니었느냐고. 그리고 다행히 아직 내게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하지 못한 말을 할 수도 있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있고, 오래 미뤄두었던 일을 시작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아직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예전에는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했다. 조금만 젊었더라면, 조금만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가 버린 시간을 붙잡기보다 내 앞에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려 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하루가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아침이 밝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와 똑같은 아침이었지만 그날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아직 갈 곳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사랑해야 할 사람이 있다. 그리고 아직 살아보지 않은 날들이 내 앞에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한다. 완벽해서가 아니다. 후회가 없어서도 아니다. 아직 내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나가 버린 젊음이 아니라, 아직 내 앞에 남아 있는 오늘이라는 것을.
![[폴윤의 중년 산책] 두 개의 얼굴로 살아온 인생 2 PaulYoon Column 2](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PaulYoon-Column-2-1024x888.jpg)
폴윤(Paul Yoon Kirkley)
CEO, Broker, Houskor Realty and Management
28 대 휴스턴 한인회장 역임
2008년 한국문학 등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