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어느 아버지의 이야기
![[폴윤의 중년 산책] # 아빠는 오늘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다 1 PaulYoon Column 110626](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11/PaulYoon-Column-110626-1024x683.jpg)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끔은 집 근처에 차를 세워 놓고 한참을 앉아 있을 때가 있다. 시동을 끄고 가만히 앞을 바라본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바쁘게 살아왔는데 이상하게도 혼자가 되는 그 순간에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것일까. 나는 오늘 가족을 위해 무엇을 했을까.
젊었을 때는 몰랐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 줄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가족을 지키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열심히 일한다고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었고, 성실하게 산다고 언제나 충분한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았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아내와 아이들이었다.
아이의 신발이 작아진 것을 알면서도 당장 새 신발을 사주지 못하던 날이 있었다.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이 오히려 마음 아팠다. 그날 나는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늘 같은 말을 물었다.
“여보, 괜찮아?” 참 이상하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대답이 그 순간에는 가장 어려운 말이 된다. “응, 괜찮아.” 나는 언제나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으면서.
아내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아이들 앞에서 힘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괜찮다는 말은 어느새 내 입에 붙은 습관이 되었다. 조금 더 넉넉하게 살게 해주지 못해서,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에 늘 일에 쫓겨 살아서,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해서 미안했다.
그런데 정작 그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사랑한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떠오르면서도, 막상 아내의 얼굴을 보면 그저 웃고 말았다.
어느 날 밤이었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와 아이의 숙제를 봐주다가 책상 앞에서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조용히 내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아내였다. 아내는 나를 깨우지 않았다. 그저 담요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어깨를 감싸주고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 나는 사실 잠들어 있지 않았다. 그 작은 담요 하나가 왜 그렇게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내의 손길이 따뜻할수록 미안한 마음은 더 커졌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큰소리치던 나는 정작 아내의 작은 배려 하나에 무너지고 있었다.
눈을 뜨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잠든 척했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평생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던 사람들인데,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지켜준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 아니었을까.’ 내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내 역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나와 함께 버텨왔다. 아이들도 부족한 아버지를 탓하기보다 그저 아빠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믿어주었다.
나는 가족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내가 보호받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몇 번이나 무너지고 싶었던 날들이 있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경제적인 어려움이 밀려올 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걱정이 가슴을 짓누를 때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다.
그럴 때면 퇴근길에 차를 길가의 안전한 곳에 세워두곤 했다. 깜빡이는 불빛만 어둠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고, 차 안에는 나 혼자였다. 그곳에서는 누구의 남편도,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었다. 그저 힘들고 지친 한 사람이었다.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던 날도 있었다. 누가 볼까 봐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다가도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면 거울을 보며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집에서는 아내가 저녁을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아빠가 언제 오느냐고 물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다림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는 울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식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 강한 아버지이고, 아내 앞에서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남편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슬퍼도 웃었고, 두려워도 태연한 척했다. 속으로는 무너져 내리면서도 밖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살아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도 사람이라는 것을. 아버지에게도 기대고 싶은 어깨가 필요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울고 싶은 날이 있다는 것을. 눈물을 흘린다고 약한 아버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고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 진정한 용기인지도 모른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언제나 당당하고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지만, 끝내 다시 일어서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내에게도 조금 더 솔직했어야 했다.
“여보, 나 오늘 정말 힘들었어.”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얼마나 많은 밤을 혼자 견뎌왔던가.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인생의 많은 길을 지나왔다. 젊은 날에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 줄 알았고, 남들보다 성공하면 가족에게 떳떳한 아버지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가족이 내게 바랐던 것은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저 내가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랐을 것이고, 아이들은 비싼 선물보다 함께 웃어주는 아빠를 더 기다렸을 것이다.
그 평범한 진실을 깨닫기까지 참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이제는 아내에게 말하고 싶다.
여보, 고마워. 부족한 남편 곁에서 묵묵히 함께 살아줘서, 힘들 때마다 괜찮으냐고 물어봐 줘서, 내가 지쳐 잠든 밤이면 말없이 담요를 덮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아빠가 많이 부족했지. 너희가 원하는 것을 모두 해주지는 못했지만, 아빠는 단 하루도 너희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아빠가 때로는 말이 없었던 것도, 혼자 깊은 한숨을 쉬었던 것도 너희 때문이 아니라 너희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란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가족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어려움을 혼자 짊어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안아주며 함께 걸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내일도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해결해야 할 걱정도 남아 있고, 살아가야 할 날들 또한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제는 믿고 싶다. 오늘이 힘들었다고 내일도 반드시 힘든 것은 아니라고. 오늘 흘린 눈물이 내일의 웃음이 될 수도 있다고.
차 안에서 마지막으로 눈물을 닦는다. 거울 속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진 한 남자가 앉아 있다. 젊은 날의 패기도, 세상을 다 가질 것 같던 자신감도 예전 같지는 않다.
하지만 아직 내게는 돌아갈 집이 있고, 문을 열면 반겨줄 가족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다시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차에서 내려 현관문을 연다. 익숙한 집 안의 불빛이 나를 맞이한다. 아내가 묻는다. “여보, 오늘 하루 괜찮았어?” 나는 잠시 아내를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대답한다. “응, 괜찮아.”
여전히 조금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늘의 그 말은 어제와는 조금 다르다.
지금은 비록 괜찮지 않아도, 내일은 정말 괜찮아질 거라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아빠는 오늘도 괜찮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그 거짓말 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마음이 숨어 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내일도 다시 일어서겠다는, 어느 평범한 아버지의 조용한 약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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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윤(Paul Yoon Kirkley)
CEO, Broker, Houskor Realty and Management
28 대 휴스턴 한인회장 역임
2008년 한국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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