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울의 간절한 마음
바울은 빌립보교회.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등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35년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양육했습니다. 그 중에는 충성스러운 제자도 있었고 도중에 배신하거나 혹은 배교하고 떠난 사람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데마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많이 세웠으나 한 교회에서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세운 교회마다 지도자를 세우기도 하고 그렇치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편지에는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들을 사랑하기에 간절함이 묻어 있습니다. 오늘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그의 간절함이 적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1-2절)
2. 종말로 하는 말은 결론적으로
‘끝으로’ 더 이상 이야기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감옥에서의 삶이 마지막이 된다고 생각한 듯 합니다. 마지막 서신 디모데후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서에 ‘기쁨, 기뻐하라, 기뻐하고, 기뻐하리라’ 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됩니다. (1:18, 2:17-18, 3:1, 4:4,10) 이렇게 ‘기쁨’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은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기쁨’이 세상 조건에서의 기쁨이 아니라,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주안에서의 기쁨이 필요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천국 백성 된 사람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된 사람들도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으로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낙심의 치료는 주안에서 기뻐함으로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전해주는 바울은 감옥에 죄수로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옥 밖에 있는 빌립보 사람들에게 ‘기뻐하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이 힘들고 어렵고 한숨 나오고 답답해도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오히려 기뻐하는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기뻐하라고 한 바울은 전에 말로 했든 글로 썼든 빌립보 교인들에게 했던 말을 반복해서 (잔소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같은 말을 쓰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도 않고 망설이지도 않고 전했습니다. 반복해서 가르쳤습니다.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안전하니라, 내게도 안전하니라” 저는 바울처럼 잘 할 수 있는 목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을 본받아 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기에 성경말씀 중에 중요한 부분은 바울 보다 더 반복하고 더 강조하여 더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만 가르치고 한번만 설교해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그렇치 못해서 문제이지요. 우리의 기억력도 문제이고요. 건성으로 듣기도 하고요. 오늘도 말씀을 잘 듣고 잘 배워 하나님 마음에 합한 멋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4.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2절)
지금은 개가 애완동물이라고 해서 집 안에서 키우고 사람 같은 대접을 받고 살지만 당시에 개는 길거리를 배회하면서 더러운 찌꺼기나 배설물을 먹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공격하는 동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좋지 못한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불결한 동물의 표본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개를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자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마 7:6) 바울도 개를 이런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곳곳에서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개란 성경적 진리를 왜곡하고 대적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무리를 주의하고 삼가해야 합니다. 진리를 왜곡하는 무리는 언제나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미혹하여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행악하는 자들. 악한 일꾼들”을 가리킵니다. 교회 내에나 교회 밖에는 항상 이런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그들은 모범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악한 자들입니다. 순수하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열심 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려고 내는 열심이 아닙니다. 그들은 가는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결국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게 합니다.
5. 손할례당을 삼가해야 합니다 (2절)
손할례란 구원받은 자에게 다시 육체의 할례를 시행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이방인 중에 구원받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온전해진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율법과 혼합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수한 은혜에 대한 훼손이요 도전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렘 9:25)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롬 2:29) 무엇을 더 해야 구원 받는다는 것이 손할례당입니다. 침례 받아야 구원 받는다. 혹은 교리를 만들어서 교리를 지켜야 구원 받는다.
6.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너희에게는 안전하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면서 똑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듣습니다. 예배를 잘 드려야 합니다. 예배에 성공자가 인생도 성공을 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십니다. 전도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선교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끝으로 복음을 전하러 나가야 합니다. “가든지 보내든지” 가지 못하면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입니다. 봉사하는 일도 너무나도 소중합니다. 누가 아니고 내가 먼저 봉사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아와 과부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섬기는 일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서로 협력하는 일입니다.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지체입니다. 목사님과 직분자들 모두 한 마음으로 협력해야 합니다. 특별히 목사님에게 협력해야 합니다. (히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정신을 차리게) 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구제와 공궤는 집사님 권사님 성도님들이 하시고 목사는 기도하고 말씀 전하는 일을 전담해야 합니다. (헹 6:1-4)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