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간은 사순절 네번째 주간이다. 다음 주간은 예수님의 수난절이다. 중국 우환 바이러스 때문에 예수님의 고난의 주간을 맞이하였으나 함께 모여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예배드리지 못하는 불행한 현실을 당하고 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셨다. 그런데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예수님의 대속의 제물이 나를 대신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속죄(贖罪)의 효력(效力)이 나타난다. 그것을 “제한속죄”(Limited Atonement)라고 한다. 나를 위하여 죄값을 치르셨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사죄의 효력(效力)이 나타난다. 그것을 효력(效力)있는 부르심(Effective Calling)이라고 한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시려고 모세를 그들에게 보내셨다. 이제 출애굽을 할 마지막 날 밤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집트 백성들에게 어린양을 잡아 집집마다 문설주와 인방에 붉은 피를 바르라고 하셨다. 이 명령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나 이집트 사람들이나 모든 사람들이게 하셨다. 그 명령에 대한 행동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믿고 붉은 양의 피를 바른 집과 믿지 않고 바르지 않는 집이었다. 행동의 결과도 두 가지로 나타났다. 어린양의 붉은 피를 바른 집은 사망이 그 피를 볼 때에 그 집을 지나갔다(Pass-Over). 양의 피를 바르지 않는 집은 사망이 지날 때 사망이 그 집을 삼켰다. 믿음으로 양의 붉은 피를 바른 집은 어린양의 피의 효력(效力)이 나타났다. 바르지 않는 집은 어린양의 피의 효력(效力)이 나타나지 않았다. 어린양의 붉은 피의 효력(效力)이 나타난 집의 사람들만 구원을 받아 홍해를 건널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피는 무엇을 예표 했는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붉은 피를 흘려 나를 대신하여 죽으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한다. 이집트는 무엇을 상징할까? 하나님 없는 세상을 상징한다. 이집트를 통치한 바로는 누구를 상징하는가? 세상 임금 사단 마귀를 상징한다. 사단 마귀의 지배를 받고 죄악과 사망의 노예로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를 상징할까? 예수 믿지 않고 죄악의 노예로 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을 상징한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노예의 생활에서 해방을 받고 자유함을 받은 사람들은 광야 40년 동안 세상에서 불기둥의 임재하심과 구름기둥의 인도하심을 받고 살아갔다. 그들은 오늘날 예수를 믿고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예표 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자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요10:27)
과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가 목자에게 속한 양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청교도들은 양을 기를 때 양떼 중에서 자기 양들에게 두가지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 먼저 귀에다 작은 고리를 달아서 표시한다. 내 소유라는 뜻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따 온 표시였다.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종이 6년 동안 주인을 섬기다가 7년째의 희년에는 자유의 종으로 풀어주었다. 이때 종이 자기에게 주어진 자유를 포기하고 자원한 마음으로 계속해서 주인을 섬기기를 원하면, 먼저 재판관에게 가서 허락을 받고, 종을 데리고 가서 주인의 안방 문설주에 종의 귀를 데고 송곳으로 뚫고 귀고리를 달아 준다. 그로부터 영원히 주인을 섬기는 종이 된다. 이제부터는 그 종을 타인에게 팔 수 없게 하셨다. 이제부터는 종은 종이로되 “자유의 종”이라고 부른다. “자유의 종”이란 주인을 섬기기로 자원하는 종이다. 안방의 문설주에 송곳으로 귀를 뚫은 것은 이제부터는 아들과 같이 대우하여 자유롭게 주인의 안방에 아들처럼 드나들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아들과 같은 종이다. 그리고 귀거리를 하여 줌으로써 너는 영원한 내 것이라는 표시이다.
그렇다. 만일 우리가 구원받은 자유의 종이라면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 것이 아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그러므로 청교도인들이 양의 귀에 한 표시는 이제 주인의 말을 듣는 주인의 양이라는 뜻이다. 귀에 있는 표시는 그 귀로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두번째 청교도들이 자기양을 양의 발굽에다가 표시를 한다고 한다. 양의 발에다 한 표시는 이제 목자가 가는 곳마다 따른다는 표시였다.
“우리는 과연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양인가?”
한 목자에게 속한 양떼의 표시와 증거는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이다.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지니라.”(요14:15)고 하셨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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