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14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의 의미를 오해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빛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런 뜻이 아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빛이 되라”가 아니고 “너희는 빛이라”고 선언하신다. “소금이 되라”고 아니고 “너희는 소금이라”고 선언하신다. 이것이 성도의 Identity(본분)이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을 녹여 다른 사람들을 썩지 않도록 이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음을 아셨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빛이 될 수 있음을 아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염두에두고 말씀하셨다. 그 십자가 사건은 반드시 있어야 할 가장 우선적인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성자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목적이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하고 헌신을 한다고 세상이 얼마나 변화될 수 있을까? 어떤 성도가 비록 자기자신을 소금처럼 녹여 희생하고 불이 되어 소멸할지라도 악한 자는 계속해서 더욱 악을 행할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말씀은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소금과 빛의 존재라”는 뜻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먼저 내 자신이 소금의 존재로 살면 내가 있는 곳에 소금의 맛이 낼 수 있다. 만일 어떤 성도가 소금 덩어리라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당연히 썩지 않을 것이다. 내가 처한 곳에서 먼저 내 자신이 등불이라면 당연히 어둠은 사라지고 내가 있는 곳에 빛을 비췰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바로 그런 뜻이다.
내가 빛이면 내가 있는 곳에는 어둠이 떠나게 된다. 예수님 자신이 소금이고 빛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이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죄인들을 그 빛 안으로 불러 모으면 그 빛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세상의 빛이 되었다. 예수님은 스스로 빛을 비추시는 빛의 본체시라면, 우리는 그 빛을 받아 비취는 반사빛이다. 빛을 받으면 빛을 반사하게 되어 있다. 어둠 속에 있으면 어둠이 되고 빛을 따라가면 빛이 된다.
초등학교 다닐 때 교실마다 까만 구공탄을 넣어 커다란 난로를 땠다. 구공탄 난로세대 사람들은 생생하게 기억이 날 것이다. 그러면 앞쪽에 앉은 친구들은 홍시감처럼 얼굴이 불그레하게 된다. 난로의 열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12)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의 빛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예수님과 함께 죽었고 함께 연합하게 산다면 우리는 모두 세상의 빛이다.
이제 누구든지 빛으로 오신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연합하여 따를 때에 생명의 빛을 얻게 된다.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오 이제는 어둠의 자녀, 진노의 자녀가 아니라, 빛의 자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예수께서는 다음으로 구원받은 제자들을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주님을 믿음으로 그의 빛을 받아 우리도 세상의 빛이 된 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8-9)
빛은 이 세상에서 없어서는 안될 가장 존귀하고 가장 필요한 존재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빛으로 오신 그의 빛을 받아 세상의 빛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빛을 받은 세상의 빛이다. 생명의 빛을 얻어 세상의 빛이 된 존재가 되었다. 우리가 빛이면 빛이 날것이다. 빛이 있는 곳에는 어둠이 공존하지 못한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의 빛을 받아 세상의 빛이 되었으므로 어두운 세상을 비출 수 있다.
인디언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해는 항상 빛을 발한다. 해가 어둠이 무엇인지를 이해가지 못하기 때문에 별이 해를 데리고 아주 컴컴한 굴로 갔다. 그러나 그 굴에 해가 들어서자 마자 어둠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역시 해에게 어둠을 보여줄 수 없었다. 해가 있는 곳에 어둠은 전혀 공존할 수 없다. 해가 가는 곳이면 어디서나 어둠은 물러가고 빛으로 충만하게 된다. 해 자체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 다만 그 햇빛이 가려지는 곳에 어둠이 깃들일 뿐이다. 해가 지면 날이 어두워지고 밤이 오지만, 어두움은 빛이 있을 때 사라진다. 아무리 밤이 길어도 낮이 되면 밤은 사라진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1:5)
하나님은 모든 빛의 근원이시다. 빛 그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 따라서 그가 계신 곳에는 언제나 빛이 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깜깜한 밤에도 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해는 반대편에서 계속 빛을 발하고 있다. 밤에 뜨는 달을 보면서 우리는 밤에도 해가 빛나고 있음을 안다. 이런 자연의 원리는 곧바로 영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빛은 영원하지만 어둠은 일시적이다. 하나님의 빛의 역사는 영원하지만 그것을 가리는 악의 어둠의 세력은 일시적이며, 결국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 우리를 방해하는 환난 근심이 없을 수 없으나 그건 반드시 일시적일 뿐이다. 그렇다. 먼저 존재가 되어야 한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먼저 소금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먼저 빛의 존재가 되어야 한다. 먼저 빛의 존재가 되면 빛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송영일목사
새생명교회 담임목사
newlife06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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