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아내가 “당신의 인생 좌우명(Favorite Motto)이 무어냐?”고 물었다.
“관계”(關係)라고 대답했다.
“무슨 관계냐?”고 물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라”고 대답했다.
“왜 관계냐?”고 물었다.
“관계를 지속하려면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뭐냐?”고 물었다.
그래서 “관계에는 사랑과 희생이 있어야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렇다.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다.
이 둘이 없으면 관계는 깨어지고 이기적인 관계가 되고 만다.
이기적인 관계는 이미 희생 없는 깨어진 관계이다.
성경의 말씀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고 한다.
여기에 등장하는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서로 용납”이라는 단어들은 좋은 관계를 힘써 지키는 희생의 모습들이다.
한 그리스도인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사랑은 부러진 뼈를 다시 붙이는 것과 같기 때문에 아픔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부러진 뼈는 관계가 부러진 것과 같다”고 했다.
부러지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부러진 뼈를 붙이려면 아픈 사랑과 희생없이 어찌 가능할까?
부러진 뼈가 다시 붙으려면 심한 통증이 따른다.
아무런 고통과 희생 없이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든 가족을 사랑하든 이웃을 사랑하든 사랑에는 희생이 따른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자를 내어 주신 희생이 있었다.
독생자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내어 주신 희생이 있었다.
희생의 사랑때문에 원수된 우리를 십자가로 화목하게 하시고 깨어지고 부러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엡2:16).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새 계명을 주셨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것 같이 서로 사랑”하지 못할까?
이유는 한 가지다.
희생이 싫은 것이다.
사람들은 희생이 두려워 사랑하기를 포기한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과 희생을 포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웃을 해치고 공격하고 죽이려 한다.
그러나 사랑하기를 포기할 때 우리는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
이웃을 해지고 공격할 때 그들은 더욱 깊은 두려움과 고통이 따를 뿐이다.
고통과 희생을 포기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모든 사람들과 관계는 깨어진다.
깨어진 관계는 고통을 가져오고 그 고통은 슬픔과 불행뿐이다.
용서는 부러진 뼈를 다시 붙게 하는 접착제와 같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좋은 사람이다.
좋은 관계는 반드시 참고 용서하고 자신을 죽이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관계가 깨어질 때 인간은 누구나 불행할 수밖에 없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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