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하루살이와 개미가 만나 대화를 했다.
개미가 자랑 삼아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저 하늘에 해가 지면 어두움이 임하고 어두움 후에는 날이 밝아 내일이란 하루가 시작한단다.”
하루살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 조상들이 말하는데, 역사적으로 그런 일은 없다던데, 거짓말 마!”
개미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설명했지만, 하루살이는 믿지 않았다.
하루 밖에 살지 못하니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분명한 건 하루살이가 개미의 말을 못 믿든지, 개미가 거짓말을 하든지, 둘 중에 누군가는 잘못이 있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어리석은 사람은 사실을 사실로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중관천(井中觀天)이라 했다.
우물 안에 앉아서 하늘을 본다는 말이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보이는 것은 지구상에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할 뿐이다.
바이러스가 눈에 보일까?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세계는 넓다.
우주는 더 넓다.
이 세상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죽음이 있다면 분명히 부활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한 알의 밀알이 죽으면 반드시 더 많은 열매를 맺지 않는가?
죽어야 사는 우주법칙이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이다.
금년에도 추수감사절이 지났다.
한 알이 자라서 많은 열매들을 거두었다.
한 알은 죽지만 또 다른 열매를 거둔다.
인생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하지 않는가?
단 한 번 주어진 이 땅에 살면서 영원한 나라를 미리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바라는 최종적인 소망은 역시 부활의 소망이 아닐까?
허리가 구부러진 어떤 노인이 정원에다 어린 과일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 때 그곳을 지나가던 한 나그네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께서는 언제쯤 그 나무에 열매를 따먹으시렵니까?”
“아마 20-30년 후면 열매가 열리겠지요?”
“노인장께서 20-30년까지 더 사셔서 이 과일을 따 잡수실 수 있을까요?”
“그 때까지야 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과일나무는 심어야 하오. 저기 있는 과일나무를 보시오. 저건 내 부친께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나를 위해 심어 놓고 가셨죠. 그래서 내 일평생 잘 따먹었다오. 그래서 나도 내 부친처럼 내 손자들을 위해 심는 거라오.”
준비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이 노인은 비록 몸은 늙었어도 마음은 소망에 사는 분이었을 알 수 있다.
모두들 점점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사실 그런 것 같다.
그러나 거기서 머무르면 안된다.
어둠 속에서 곧 떠 오를 새벽별을 기다리듯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우리에게 반드시 있어야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소망이다.
소망(所望)은 오늘 살게 하고 이기게 하고 견디게 하는 힘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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