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사람들에게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눅6:46)고 이상히 여기셨다.
왜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진정한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가 내 마음과 생각과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지배받는 사람이다.
우리의 삶이 아무리 화려해도 만일 아직도 내 자신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이 내 자신이라면 나는 입으로만 주여 주여하는 사람이다.
반면에 우리의 삶이 사람들 앞에서 초라해 보일지라도 만일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그 분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다.
결국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은 내 자신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이 나를 통치하실 때 하나님은 진정한 나의 주님이시다.
그때 비로소 주의 뜻대로 행할 수 있다.
그렇다. 신앙이란 방향의 문제이다.
나의 마음이 나의 생각이 나의 입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죄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제사장의 직무를 대신한 오만의 죄였다.
또 아말렉의 가축들과 사람들을 다 죽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였다.
제일 살진 송아지를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겠다며 자기 맘대로 별도로 살려두었다.
그것이 합리적이라는 자기중심이다.
사울의 죄는 자기생각을 절대화한 자기중심이었다.
반면에 다윗왕은 어떻게 했는가?
남편이 있는 여자를 궁전으로 데려다 간음을 하고 임신을 시켰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다윗왕의 충성된 부하였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군대장관 모압 장군에게 명하여 전장에서 살인교사를 저질렀다.
사울 왕과 다윗왕의 죄악 중에 누구의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인간적 판단으로 다윗왕이 더 악하고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고 대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훗날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렀다.
얼른 보기에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방향을 보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범죄했지만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 앞에서 즉시 죄를 시인하고 왕관과 왕복을 벗어 던지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제 위에 앉아 하나님 앞에 석고대죄하고 회개했다.
반면에 사울왕은 사무엘 선지자 앞에서 즉시 죄를 변명하고 자기합리화를 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다.
이것이 두 사람의 차이점이다.
다윗은 범죄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었다.
죄에 대한 통곡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여기셨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보면 야곱이 훨씬 죄가 크고 많은 사람이다.
배고픈 형에게 팥죽 냄새를 풍기게 하여 형의 급한 성정을 잘 아는 동생 야곱이 형의 약점을 이용해서 그 중요한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샀다.
그리고 형이 받아야 할 축복권과 상속권을 악한 술수로 가로채 버렸다.
그러나 에서는 장자권도 축복권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언약의 가치도 축복의 가치도 몰랐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를 망령된 자라고 평가한다(히12:6).
망령된 자는 어리석은 자라는 뜻이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열망의 마음과 믿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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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2) 205-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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