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라사대 하면 그대로 되었다. 그 가라사대가 예언인 경우가 구약이고 성취된 경우가 신약이다. 이제는 믿는자 에게 이루어지면 된다. 사람은 말의 동물이다. 최고의 말은 죽음이 없다는 말이다. 영생이다. 이런 말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을 성도라고 부른다. 그래서 성도는 그것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다. 구별된다는 말은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성도가 가진 말이 소중하기 때문에 구별된다는 말이다. 이것 없으면 너나 나나 단지 육체일 뿐이고 리차드 포스터가 세상의 3S를 말한 적이 있었는데, 스포츠와 스크린과 섹스다.
말씀하시되가 그대로 공중에 떠있기만 했다면 3S의 세상 아래서 세상은 저절로 사라졌을 것 같다.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주목하면 온몸이 힘을 얻는다. 교회는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세상에 물론 속해 있는 것도 아니다. 교회는 망가진 영혼을 섬기고 구원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다 망가졌기 때문이다. 영혼구원은 복음의 다른 말이다.
안드레와 요한은 예수의 제자다. 그 전에는 어부였다. 온 집안이 어부였다. 갈릴리 호수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살았다. 그 일은 나쁘지 않았을 것 같다. 세금에서 좀 자유로운 시골 어촌 이었으니까.
갑자기 나타난 예수가 세례요한 붙잡히고 나서 활동을 시작하려고 사람을 찾아다닌다는 소문정도는 있었을까? 예수의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물을 필요가 없다. 어부들도 소문난 어부들이었을 것 같다. 사람을 낚는 어부쯤 되려면 고기잡이 베테랑 정도는 되었을 테니까.
인생과 세상사가 다 그렇다. 어부에서 어부로 살다가 생선가게 정도 차리고 어부로 마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이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고 해도 수 백 년이 지난 그때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믿음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던 것은 분명하다.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
예수는 말했다. ‘나를 따라오라’ 이 한 마디가 무슨 힘이 있었을까? 어부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아버지를 버리고 따를 만큼의 힘이 있는 말이었다는 것일까? 예수의 입은 성령충만이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 성령을 통해 예수의 입의 말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은 예수를 따르고 있는 지금의 교회들 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그 신비는 이렇다.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말씀에 대한 신비가 회복되고 이해 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모세가 행복했을 때는 야훼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했을 때 백성들이 일제히 아멘!이라고 화답을 했을 때였다고 했다.
이 일은 처음부터 그랬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 나라는 아멘하면 되는 나라이다. 원래가 하나님의 나라가 그런 것이었다. 생각해 보자. 명령은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please please라고 해도 나 몰라라였다.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들으면 되는데, 듣지 못하게 하는 그것들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하나님의 최고의 기쁨은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사람들이 순종하는 데 있다. 말과 영상의 홍수 시대에 사람 살리는 말을 잘 듣고 분별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래야 세상에 떠내려가지 않는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빛이 있으라.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았을까? 그 빛은 하나님의 입에 있었다. 그래서 입의 말씀이 빛의 말씀이 된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와서 말한다. 나를 따르라. 그 말을 듣고 예수를 즉시 따랐다. 예수의 입에서 나온 빛이 그들의 마음을 비추었고 눈을 뜨게 했다.
제자 마태는 3년반 예수를 따라다닌 후에 하나의 결론을 얻었다. 예수는 하나님의 입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니 무슨 말인가?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이 빛이 있으라 라고 했던 그 말씀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이다.
이 능력이 어부들을 예수의 어부들로 바꾸어 버린 단 하나의 이유다. 예수는 잘살게 해주겠다. 돈 많이 버는 어장을 만들어 주겠다. 부자 되는 길을 가르쳐 주겠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세상과 종교는 예수가 말하지 않는 것만 골라서 피해서 말한다. 그래야 장사가 되나보다. 부자가 되나보다. 사람들이 박수를 쳐대니까. 이 일들은 교회들에게서도 있는 현실일수 있다. 그리고 종교들은 그 말들 뒤에다 예수의 이름을 추가한다. 예수는 꼬리가 된 셈이다. 잘 살고 잘 먹고 부자 되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한번 물어보고 싶다.
어부들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강력한 힘이 그들을 싸고 돌았을 때 어부들은 제자가 된 것이다. 천군 천사의 보호를 받는 하늘의 시민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늘의 시민들은 하늘의 말씀을 듣고 알아듣는 사람들이다. 천국의 규칙을 알고 천국을 사는 방법을 안다. 주 예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 그 방법들이다.
어부들은 마치 에녹이나 엘리야처럼 휴거가 된 것이다. 그 순간은 휴거가 된 것이다. 우리도 휴거가 될 수 있을까? 휴거가 되고 싶은가? 그러면 휴거를 일단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 휴거는 어부들이 예수를 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입의 말이 들렸을 때를 말한다.
세상과 종교의 천만 마디의 말 보다 한마디의 깨달은 말이 어부들을 제자가 되게 했다. 그 전에는 일생 동안 단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하늘의 목소리였다. 깨달은 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나를 따라오라는 예수의 말이 들렸던 그 순간을 의미한다. 이것은 말씀의 휴거와도 같은 것이다. 이 휴거를 경험한 사람들이 믿음과 구원의 사람들이다. 영원한 휴거가 있기 전에 일상 안에서의 휴거가 먼저 있을 때 그 순간이 평생의 신앙을 운전한다. 이것이 성도의 운명이 될 때 하나님 나라의 모든 꿈이 이루러 진다.
말씀하시되, 예수께서 가라사대 주께서 말씀하시되, 모두 같은 말이다. 이 말씀들이 제자들의 마음에 박힐 때 그것을 깨달은 말이라고 한다. 바울이 말한 깨달은 다섯마디 라고나 할까. 깨닫다는 라는 뜻이 이토록 중요하다.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 예수의 입의 말씀이 된 것도 예수에게 말씀을 깨닫게 했던 성령의 가르침이었다. 이와같이 예수의 입의 말씀이 깨달아 지는 것도 성령의 능력으로 되는 것인데, 그 능력이 하나님과 예수의 입과 제자들의 입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
예수는 듣고 행하라고 했다. 듣는다는 말은 깨달으라는 말이다. 단지 들어라 그런 말이 아니다. 깨닫기도 전에 행하면 그것이 얼마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무거운 짐이 되게 하는가. 그 결과로 사람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이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는 것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 사람들은 알게 된다.
깨달음이 아직이면 일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 일을해야 하고 행동을 해야 하고 그러나 시 119편 1절은 ‘행위 완전하라’고 했다. 이것이 율법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이것이 소위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주 예수의 하신 일이 그것이었다. 깨닫기 전에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고 그래야 사는 것 같은 종교적 동물들의 시대가 되 버린 죽은 시인의 사회같은 세상을 이해하면서 ‘행동하기 전에 먼저 깨달아야 한다’고 들려주려는 것이다. 이것이 사랑이다. 말씀하시되 이 말은 성령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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