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이 함께했다. 안믿으면 성령이 없다는 말이다. 믿게 하는 일은 성령을 받게 하는 일이다. 세계인구의 70%는 믿음이 없다. 소위 무신론자들이다. 가짜에 소속해 있다. 가짜는 일반화되고 대중화, 조직화되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그들에게는 돈도 많고 사람도 많다. 전략 전술도 좋다.
교회도 처음에는 성령의 능력따라 넓게 퍼져갔다. 그러나 갈수록 양적으로 질적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넓은 문에는 사람이 많다. 눈에 보이는 문이기 때문이다. 좁은 문에는 사람들이 적다. 눈에 안보이기 때문이다. 좁은 문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문이니 넓었으면 좋았었겠다. 좁은 문은 성령이 드나드는 문이다. 보이지 않으니 찾을 수 없다, 그래서 기도한다. 그러다가 보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모든 일은 시편과 잠언에 적혀 있다. 다른 책들은 이야기와 스토리위주다. 너무 길게 쓰여 졌다.. 예수는 스토리와 시편을 함께 사용했다.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른다. 소위 세상이다.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아직 십자가와 부활이 없다. 자기들만 옳다는 사람들이다. 성경에는 있는 십자가와 부활이 그들에게만 없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도 이 좁은 의미를 잘 이해 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그래서 모두 종교인들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를 못했다. 성경은 언제든지 사람들의 악세사리였다. 말씀을 받게 하는 일은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따라서 성령이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주 예수의 부활’ 이야기다. 누구든지 예수 부활을 믿고 부활을 말하면 성령은 즉시로 함께 한다. 부활을 만났거나 부활을 알면 더 훌륭한 일이다. 이 말은 모든 죄와 허물과 죄책감이 사라졌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부활을 겨냥했다. 부활은 모든 성경을 해석한다. 그러니 부활에 대한 이해가 저렴하면 성경이 저렴해 진다.
성경은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음으로 몰고가는 자신들의 소욕과 야망과 무덤과 실패와 우울증과 열등감과 비교의식과 같은 시체들에게 쉽게 넘어간다. 그리스도는 죽음이 없다는 뜻이다. 죽음은 이방인과 유대인들에게만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지독한 죽음의 냄새들이 있다. 죽음에는 소망이 없다. 죽음의 꿈은 지옥이다. 지옥은 죽음의 집이기 때문이다. 머리와 마음에 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천국을 만든다.
‘예수 부활하셨다’라는 말을 통해 성령은 일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믿는 자들이 성령과 함께 사는 최고의 방법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는 이것이다. 복음을 전하고 싶으면 ‘예수부활하셨다’를 일년내내 말하고 살면 된다. 어디에서 든지. 이 말속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고 비밀이 많고 이 일을 통해 성령과 함께 사는 것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경중을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한번 누구든지 아무에게나 기회를 얻어 말해 보라! 예수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는 유령과 같았고 사람과도 같았다. 유령은 물 위를 걸었다. 우리 안에 들어 오기도 한다. 엑스레이 같다. 들어오면 좋고 나가면 좀 사람이 이상해진다. 그 사람은 죄인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포도주도 마셨다. 믿는 자들이 예수부활을 말하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우리도 기도하는 유령이 되고 일상에서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답게만 살려고 하면 인생이 재미가 없다. 인생의 선을 넘고 한계를 넘는 일은 부활예수를 말하면 되는 일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신앙과 대화 속에는 천국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있다. 부활을 전하는데 인색해졌기 때문이다. 부활이 곧 천국의 삶인데 천국이 사라졌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다른 것들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것 조차도 인식을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성경은 예수 부활을 말하면 성령이 일을 한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준다. 사도바울의 말에 따르면 믿는 자의 입에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모든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팀켈러가 그 의 책이름을 ‘부활을 살라’라 했다. 그러나 성경은 부활을 말하라고 했다.
우리는 부활 예수와 함께 밥 한번 먹은 적이 없었지만 같이 밥먹었던 베드로와 형제들과 사도들이 전한 그 소식을 믿음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되면 된다. 전하면 성령이 함께한다고 했다. 나의 처지와 환경과 현실의 어떠함 그리고 있고 없고는 잠시뿐이다.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전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한.
그래서 부활예수를 말하면 성령은 100% 전하는 자와 함께한다. 전하다 보면 답답한 일도 당하고 소통이 안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면 성령이라고 말하고 도움이 안되면 도망간다. 심지어는 성령의 하는 일을 몰라서 거절하기도 하고 알면서도 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믿는 자들은 예수부활을 말하면서 사막에 강을 여는 것처럼 소통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소통은 언어의 힘이다. 소통은 서로듣는 경청을 말한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는 말이 소통을 살린다. 부활예수를 말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성령은 문을 열어주고 관계를 만들어 주는 연결고리같은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성령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쉽게 가지는 않는다. 현실은 애굽의 세상과 광야의 방황과 가나안의 도전이 언제든지 혼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어떤 경우에도 성령과 함께 사는 일이 중요하다. 믿음 생활은 그래서 분별이 필요하다. 애굽은 나쁜 말들과 거친 말들, 아첨과 입바른 소리들, 비판과 헛된 사상과 속임수와 근거없는 유언비어를 그리고 탐욕스런 언어들이 독을 뿜어 내듯이 생산되는 곳이다. 애굽은 좋은 말이 없다.
애굽을 상대할 때도 예수 부활을 말한다. 이보다 좋은 말이 없다. 언어의 부활을 촉구한다. 이유는 내가 애굽을 상대할 수가 없다는 전제 때문이다. 믿음이 애굽을 상대한다. 내 견해가 중요하지 않다. 예수부활을 말할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때마다 성령이 함께 한다는 믿음이다. 애굽에서 재앙으로 죽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도 모르고 죽었다.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재앙 정도로 알았을 것 같다. 세상은 또 이렇게 죽어 간다.
예수부활의 신앙은 어떤 독한 말을 들을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 이 정도의 담력과 강한 멘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독한 말들과 나쁜 말들을 피하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서 광야로 끌고 나온다. 애굽에서는 고통스러울 수는 있어도 여호와 하나님께 피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때문에 성령을 만나게 된다. 광야는 하나님을 독대할 수 있는 곳이다. 오늘날 교회가 광야의 기도처다.
홍해를 들락날락 하면서 세상과 광야의 경계선에서 결국은 주 예수의 길을 알게 되고 광야같은 교회에서 생명과 성령과 부활의 말씀들을 들으면서 애굽과 광야의 확연한 차이를 보게 된다. 문제는 차이를 보면서도 애굽을 사랑해서 다시 애굽화 되었거나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는 점이다. 슬플정도가 아니다.
애굽에서 광야를 거치지 않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법은 없다. 광야는 애굽과 똑같은 실패가 있어도 믿음 안에 있다는 점이 다르다. 성령은 광야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부활예수를 만나게 했다. 부활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애굽과 가나안이 다른 점은 거의 없다. 문제는 광야다. 스데반은 광야를 교회라고 표현했었다. 그 빛나던 바울도 스데반을 알아보지 못했으니까! 심지어 부활예수의 말들은 애굽과 광야와 가나안의 언어가 아니라 성령의 언어다. 위로부터 온 생명이다. 애굽이든 광야든 어디서든지 예수 부활했다를 말하면 성령이 나와 너를 부활하게 한다. 신앙의 여정은 성령과 함께 가는 길을 말한다. 부활예수를 말할때 성령이 찾아온다. 성령은 말씀에 붙어 산다. 바로 이것이 사는 길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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