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추억하며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데 엄마는 내 곁을 떠난지 강산이 여러번 변한 지금도 왜 그리도 그리움이 뼈에 사무쳐 오는지 무엇으로도 달랠 수 없는 보고픈 우리 엄마다.
엄마 사진을 들여다보며 가슴에서 눈물이 흐르고 보고픔이 세포처럼 내 마음에 퍼져 소리내어 울기도 많이 했다.
배고팠던 50년 대 시절, 난 중·고등학교 6년 동안 한번도 도시락을 싸가지고 학교에 간 기억이 없다.
내가 중학교 2학년때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아버지는 누워만 계셨기에 엄마가 가장으로 나서셨다. 남들처럼 좌판이 있어서 물건을 놓고 팔지도 못하고 그냥 땅바닥에 늘어놓고 쭈구리고 앉아서 팔으셨다.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팔고, 이고 다니면서도 팔고 하셨다. 몸이 부서지도록 고생하셨던 우리 엄마의 손은 구부러진 거미손이었다.
밥은 굶어도 배워야 된다는게 우리 엄마의 강한 신념이셨다. 배고픈데 무슨 공부냐 하는 것은 끼만 넘치고 착하신 우리 아버지의 지론이셨다.
다다미 석장짜리 골방에서 울먹이시며 기도하시는 엄마의 그 애절한 소리를 들으며 우리 형제들은 자랐다. 엄마는 아버지를 위해 가끔씩 시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자라를 사오셔서 피를 내어 아버지 입에 흘려넣어 주시면서 극진한 간호를 하셨다.
그때는 집집마다 애들을 많이 키웠고 학교에 학생 수는 많았다. 그러나 부모님들이 교육비을 감당못해 자녀들이 고통이 컸다. 월사금을 못내면 시험때 무조건 내쫒아 돈가져 오라고 했었다. 악착같은 애는 어떻게 하던지 공부했고 견디지 못하는 애들은 중도하차하여 형제들의 학력의 높낮이가 고르지 못했다. 엄마는 나보고 쇠심줄보다 질긴 년이라고 욕인지 칭찬인지를 했었다
이민 왔을때 12살 큰 애, 10살 둘째, 3살 셋째는 이제 중년을 넘어섰고, 큰 애는 환갑이 머지 않은 곳에서 어른거린다. 그 어린 아이들 셋을 데리고 이민길에 올라 모두들 잘 장성하여 제갈길을 가고 있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두고두고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심 깊은 엄마로부터 태어난 것이다.
내 나이가 어느새 이 세상을 떠나셨던 엄마의 나이에 이르렀다. 엄마와의 재회의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우리 엄마
못다한 감사한 말 그때 만나 다 쏟아낼거에요.
많이 사랑하고 보고파요.
수고 엄청 하셨어요, 엄마 –
내가 너무 무심했어요.
후회가 쌓이고 쌓여 가슴을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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