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9월 17일 이 날은, ‘사라호 태풍’으로 한반도 역사상 재산 및 인명 피해 측면에서 최악의 태풍으로 기록된 날입니다. 특히 제주도와 영남일대를 초토화 시킨 사라호 태풍으로 사망, 실종자가 849명에 이르고 이재민은 37만 명에 달했는데 이것은 사라호 태풍이 남긴 그날의 흔적이었습니다. 그때 내 나이 9살이었는데 내가 이 날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날이 바로 ‘추석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고아원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날이 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1년 중 흰 쌀밥에 소고깃 국을 먹는 날은 설날과 추석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가 전부였는데 ‘사라’가 덮친 날은 추석 당일이었습니다.
우리는 추석 바로 전날(9월 16일) 남천강에 가서 목욕을 했는데 물이 좀 차갑긴 했으나 내일이 특별한 날이라 의무적으로 몸을 씻어야만 했습니다. 날씨가 짙게 흐리긴 했지만 목욕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강에 들어가자마자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빗살은 마치 ‘총알’와 같은 위력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빗방울이 소나기처럼 퍼부었다면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강력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구의 지시도 없었지만 급하게 옷을 챙겨들고 무작정 집으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으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노아 홍수 때 내린 비가 이러지 않았을까 할 정도였습니다. 3년 전 허리케인 ‘Harvey’가 비를 쏟아부을 때 새벽 서너 시 경 밖에 나가보았는데 쏟아지는 그 빗줄기는 장중(莊重)함이 있었으나 ‘사라’ 때 내린 비는 천둥번개와 함께 요란한 폭음소리를 내며 쏟아져 내렸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추석 며칠 전부터 교회를 비롯 각 기관에서 가을철에 거두어 들인 과일과 음식(떡, 빵, 과자 등)들을 가져왔는데 우린 ‘사라’에 대한 심각성도 없었던 터라 혹시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저들이 가져 온 그 음식들은 어떻게 되나 그게 걱정이었습니다. 오늘 낮에만 하더라도 여러 기관에서 제법 많은 양의 선물들을 가지고 와서 같이 사진도 찍고 했는데 이제 내일이면 추석이라 오랜 만에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다 흰 쌀밥에 소고기 국에 대한 관심만 있었을 뿐 눈앞에 닥칠 대홍수에 대해 큰 형들을 제외하곤 긴장하는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는 점점 우리를 불안케 했고 통신망이 좋지 않을 때라 지금 밖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밤이 깊어 가지만 두려움 때문에 아무도 잠자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이때 ‘상길’이 형이 아이들을 한 방에 모이도록 했는데 같이 모여있으니 두려움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해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길이 형이 무슨 설교를 했는데 그때 읽은 성경구절이 무엇인지 설교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설교는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칠판에 찬송가 가사를 써 놓았는데 그것은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는 찬송가였습니다. 물론 처음 불러보는 노래였습니다. 호롱불이 켜져 있긴 했으나 칠판에 쓰인 가사가 보일랑말랑 했는데 무슨 내용인지 그리고 무슨 뜻인지 알 리가 없는 어린 때였으나 찬송을 가르치는 상길이 형은 두려움에 어쩔줄 몰라하는 우리들을 감싸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속도로 불렀고 형들과 누나들 사이에 앉아서 이 찬송을 부를 때 천둥번개가 요란하게 터지고 있었지만 그 찬송과 상길이 형의 설교로 우리는 평온을 유지했고 ‘하나님께서 사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란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이 찬송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나의 찬송’이 되었고 40년 목회하는 동안 내가 인도하는 예배시간에 가장 많이 부른 찬송이 바로 이 찬송가였습니다.
그 다음 날, 즉 추석 당일 날 아침, 밤새 퍼부은 소나기로 인해 우리가 살던 ‘삼문동’은 제방이 무너짐으로 그야말로 물바다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물이 들어오는 그 시간은 아침 식사하기 바로 직전이었는데 물이 점점 차오르는 것을 본 우리는 거의 차려 놓은 추석음식(흰 쌀밥에 소고깃 국)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 매고 ‘읍(邑)’에 있는 밀양감리교회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사라호 태풍이 야속했던 것은 1년에 한번 있는 추석명절 날, 답지된 음식들이 물에 잠김으로 그날 먹지 못했던 그 음식들에 대한 아쉬움이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뒤숭숭한 가운데 있지만 그래서 주정부로부터 혹은 시로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일환으로 지침이 내려져 있으나 주일 날 예배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지난 2월부터 버몬트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데 지난 주일(3월 22일)은 예방차원에서 교인들에게 주일 예배 순서와 설교내용을 프린트 해서 우편으로 보내고 각자 집에서 예배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버몬트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몇몇 안 되는 교인들이었지만 모두 예배에 참석했는데 참으로 반가웠고 고마웠습니다. 물론 예방과 소독을 철저히 하고 충분한 거리를 두고 은혜로운 예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날 예배시간에 60년 전, 어두운 호롱불에 비쳐진 찬송가사를 보고 불렀던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 오라’는 찬송을 불렀는데 하마터면 소리 내어 울뻔 했습니다. 옛날을 생각하기 보다는 모든 위험 가운데 처한 우리를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으로 속에서 뜨거움이 솟구쳤고 역병이 창궐하는 이때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란 강한 은혜가 임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임하셨던 이 은혜가 휴스턴 지역에 거주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임하시고 어려운 이 시기에 우리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날들로 채워지시기를 기원합니다.
피난처 있으니(79장 새 70장)
-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데 없네.
-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유양진목사
버몬트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2190 E. Lucas Dr.
Beaumont, TX 77703
909-635-5515, 868-8545
yooy00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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