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덕분에 내 인생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폴윤의 중년 산책] 어땠을까? 1 PaulYoon Column 1 1](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PaulYoon-Column-1-1-1024x819.jpg)
가끔은 아무 이유도 없이 오래된 노래 한 곡이 마음을 붙잡을 때가 있다.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노래 한 곡, 식당에서 우연히 들려온 익숙한 멜로디, 혹은 잠들기 전 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온 오래된 가사 한 줄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기억들을 깨운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내가 그때 널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노래의 가사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후회 없이 살겠다고 다짐하며 살았다. 무엇이든 결정할 때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순간에는 그것이 가장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후회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된다.
후회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때문에 생긴다는 것을.
중년이 된 지금 내게는 더 이상 거창한 꿈도 많지 않다. 젊은 날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도 없고,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무모한 자신감도 사라졌다. 대신 가끔 창밖을 바라보다가, 오래된 사진을 넘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조금만 달랐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첫사랑도 생각난다.
그 시절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 그저 함께 있는 것이 좋았고, 하루라도 못 만나면 세상이 끝난 것처럼 서운했다. 별것 아닌 일로 다투고, 자존심 때문에 며칠씩 연락하지 않기도 했다.
그때는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다. 영원할 것이라 믿었기에 소중함을 몰랐다.
사랑은 언제나 내일도 있을 것 같았고, 그 사람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붙잡아야 할 순간에 붙잡지 못했고,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순간에 침묵했다.
세월이 흘러 그녀는 추억이 되었고, 나는 중년의 남자가 되었다.
가끔 그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생각한다.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손주를 안고 웃고 있을까. 어쩌면 나처럼 흰머리가 늘어나 거울을 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시 만나고 싶다는 마음보다도, 그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런데도 가끔은 생각한다. 그날 내가 한 번 더 붙잡았더라면 어땠을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안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지금도 함께 늙어가고 있었을까.
물론 답은 없다. 인생은 시험지와 달라서 정답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떠올리는 “어땠을까”는 꼭 첫사랑에 대한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 생각도 난다.
젊었을 때는 부모님이 영원히 내 곁에 계실 줄 알았다.
전화 한 통도 귀찮아했고, 함께 밥 먹자는 말씀에도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짧다는 것을.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뵀더라면 어땠을까. 손을 한 번 더 잡아드렸더라면 어땠을까. 사랑한다고 한 번 더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질문은 지금도 가끔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자식들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놀아주지 못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버렸고, 나를 따라다니던 작은 발걸음은 이제 각자의 길을 향하고 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 현실 속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되어 있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살아갈 때는 느린 것 같은데 돌아보면 너무 빠르다.
그래서 중년의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과거를 자주 돌아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돌아본 과거에는 늘 같은 질문이 남는다.
“어땠을까.”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조금 다른 생각도 하게 된다.
만약 인생의 모든 후회를 지울 수 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첫사랑과의 이별도, 부모님께 다하지 못한 효도도,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도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조각들이다.
후회는 아프지만 사람을 깊게 만든다.
그리움은 슬프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제는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꼭 슬프게만 들리지 않는다.
그 질문 덕분에 나는 오늘의 사람들을 더 소중히 바라보게 된다.
아내에게 한 번 더 다정하게 말하고, 자식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게 된다.
어쩌면 인생은 과거를 바꾸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후회를 통해 오늘을 더 잘 살아가기 위해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물든다.
어느새 내 머리에도 세월의 색이 짙게 내려앉았다.
이제 남은 인생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이 왔을 때는 한 가지 질문만큼은 남기고 싶지 않다.
“왜 그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마음속 사람들에게 조용히 말한다.
사랑했다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함께했던 시간들이 참 행복했다고.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많은 “어땠을까”가 아니라, 후회 없이 건넬 수 있는 한마디인지도 모른다.
“당신 덕분에 내 인생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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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윤(Paul Yoon Kirkley)
CEO, Broker, Houskor Realty and Management
28 대 휴스턴 한인회장 역임
2008년 한국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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