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험은 어렵다. 그러나 시험을 통과함으로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 천국에 이르는 일도 이와 같다. 이것은 땅에서 사람이 풀 수 없는 문제다. 땅의 문제는 땅에서 풀고 천국의 문제는 천국의 지혜로 푼다. 천국을 보아야 천국을 들어갈 수 있다. 문제가 여기에 있다. ‘거듭나지 아니하면 천국을 볼 수 없다.’
첫째로 거듭남이라는 문제다. 이 문제가 이스라엘의 랍비 앞에 있었다. 예수는 이미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만든 인물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온 성안에 예수 소문은 파다했다. 니고데모는 예수를 하나님께로 온 랍비로 부르게 된다. 니고데모는 살고 싶었다. 구원을 받고 싶었다는 말이다. 지식도 있고 성경도 있고 권위도 있고 그러나 예수의 한마디의 질문에 모든 것이 허물어진 사람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한마디면 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니고데모가 예수로부터 받은 질문같은 것이다. 거듭남이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 없었나 보다. 니고데모는 성경을 샅샅이 뒤져도 찾지못했다. 이스라엘의 이너써클에 있었던 사람이 거듭남이라는 말에 대답을 할 방법이 없었다. 다른 랍비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부끄러운 사람, 아무것도 모르면서 안다고 이스라엘을 가르쳤던 사람, 니고데모는 거듭남이라는 말을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이 사람에게는 표적이 문제가 아니라 이해가 문제였다. 이것이 그에게는 구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성경과 예수에 관한 지식 뿐이었다. 예수가 없고 성령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바리새인이다. 성경의 일점일획을 벗어나서는 안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거듭남이라는 예수의 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대답을 한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거듭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참 정직하고 순진한 사람이다. 성경도 예수의 말도 고지 곧대로 듣는 바리새인의 기질을 누가 뭐라고 할 바는 아니다. 거기까지 이니까?
성경 속에 가장 탐나는 여인이 잠언 31장에 있다. 이 여인에 대해서는 현숙한 여인이고 팔뚝도 꽤 굵었나보다. 일상의 24시간이 모자라고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라고 써 있다. 이왕 모태에 들어가는 것 같으면 이런 여인의 모태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으면 좋은 유전자를 받아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오늘의 의학은 정자은행을 통해 이 일도 서슴치 않고 행한다. 예수는 니고데모의 모태에 대해서 육에서 난 것은 육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했다. 이말은 영의 어머니는 성령이고 육의 어머니는 육이라는 뜻이다.
또한 어떤 이가 죽을 뻔 했는데 살아났어도 거듭남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인생 산전수전 겪고 다시 살아났어도 거듭남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의 말을 알아듣는 것이 거듭남의 본질이다. 이를 두고 예수는 내가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했다.
암병이 걸려서 죽을 뻔하다가 안 죽고 다시 살았다. 이것 또한 거듭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거듭남은 예수가 말하기를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했다. 거듭남이라는 성경단어는 아노뗀이다. 이 단어는 두번째가 아니라 위로부터라는 뜻이다.
그리고 둘째로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라고 그 방법을 예수는 말해 주었다. 니고데모는 물과 성령이라는 그 자체도 경험한 적도 없고 그리고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에게는 물은 목마를 때 마시는 물을 생각하고 있었고 성령에 대해서는 어떤 기이한 표적 정도로 확신하고 있었다. 이 인류는 하나님의 속안이지 예수의 일은 아니다.
물은 세례를 기본적으로 의미했다.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다. 세례는 종교적 개종과 입교의 성격을 가진다. 물세례를 통과한 사람은 세례요한의 말처럼 내 뒤에 오시는 이인 예수를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예수를 믿으면 성령이 임재한다.
성령의 임재는 두 종류의 방식으로 일을 한다. 하나는 예수를 믿을 때 나타나는 성령의 나타남이다. 이 나타남은 방언으로 또는 예언으로 병고침으로 소위 기적과 표적들로 나타난다. 에베소의 회당은 성령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었다고 했다. 바울이 예수를 믿으라고 말했고 그 이름을 듣기만 했는데 에베소의 회중들에게 성령의 은사가 임했었다. 그리고 에베소에 있는 회당이 에베소교회로 변했다. 이 변화는 종말을 해석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에베소회당에서 예수에 관하여 성경을 가르쳤던 사람이 언변이 뛰어나고 주의 도를 잘 아는 아볼로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니고데모처럼 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이었고, 바울과 견줄 만큼 말쟁이였다고 했다. 아볼로는 회당을 방문하면서 주 예수에 관하여 성경에 근거하여 담대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까지만 알 뿐이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아볼로의 성경강론을 듣고 있었던 사람들 중에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회중가운데 있었다.그들은 모임후에 아볼로를 데려다가 성령의 말씀을 더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성경의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아볼로가 거듭났다.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알 수 있는 성령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위의 두가지의 성령의 임재 방식에 대해서 하나는 일만 마디의 방언이라고 했고 또 하나는 깨달은 다섯마디의 말이라고 했다.
예수가 거듭나라고 했을 때,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곧 깨달은 다섯 마디에 대한 성령의 임재를 말한 것이다. 예수 메시지의 결론은 ‘듣고 행하라’로 압축이 되기 때문이다. 성령 안에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이다. 성경 선생이나 성경을 잘하는 사람들은 가르치기는 잘할 수 있으나 인격과 삶에 있어서 십자가를 가까이 하지 않음으로 변화가 안되고 랍비나 스승의 자리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인류들이다.
예수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천국의 시험문제는 모두 3문제 였다. 1번은 거듬남으로서 이것은 모태로 들어가는 문제가 아니고 모태로 들어갔다 나오는 횟수가 아니고 그리고 인생 중에 말로할수 없는 고통과 슬픔중에 여러번 죽을 뻔했다가 다시 살았다는 거듭남에 대한 땅의 이야기가 아니고 만나와 메추라기같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성과 같은 선물로서 거듭남이라는 것을 말했다.
그리고 2번 문제는 물에 대한 것이다. 물은 요한의 세례나 예수를 믿는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의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예수 믿고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불행한 일이고 그리고 말씀은 위에서 내려왔던 거룩한 하나님의 물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은 그것의 예시였다.
예수는 자신이 성경이라고 말했다. 모세와 시편과 선지자의 글들이 그것을 증명했다고 했다. 이 성경이 물과 성령의 말씀을 두고 떠났다. 물과 성령이 어머니의 모태다. 그 모태로 들어갈 때 거듬남이 일어난다.
따라서 우리가 성전이라고 말할 때 그 성전은 벽돌로 지어진 집이 아니라 물로 지어지고 성령으로 채워진 집을 말한다. 이것이 바로 그 물과 성령의 교회다. 이 살아있는 교회는 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성경대로 되어진 집이며 3번 문제 성령의 집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천국의 해답을 가진자가 복있는 자다. 성경과 성령은 새의 두날개와 같다. 미치도록 좋은 날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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