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 7가지가 기록 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기적과 두 번째 기적은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였습니다. 세 번째 기적은 예루살렘에서 행하셨습니다. 첫번째 기적은 혼인잔치집에서 행하신 물로 포도주를 만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두번째 기적은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 주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을 통해서는 왕의 신하와 그의 온 집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번째 기적은 죄 값으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38년 된 병자에게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안식일이였습니다. 세번째 기적을 행하시고 나서부터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것을 아시고도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38년된 병자 뿐 만 아니라 손 마른 사람도 안식일에 고쳐 주셨습니다. (막 3:2)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인들의 죄 값을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당하셔야 할 모든 고난을 내다 보시면서 의도적으로 안식일에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마 12:8) 안식일에 주인 뿐 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의 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유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 오는데 그때 못이 물이 움직일 때 누구라도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라. 거기에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병자가 대답하되 주님 물이 움직일 때 누가 나를 도와 주어야 하는데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힘들게 가보면 벌써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 갔습니다. 그러니 나 혼자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불가능한 일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묻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 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어라” (14절) 그 사람의 병은 자신의 죄 값으로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엔 질병의 원인을 4가지로 설명합니다. 죄 값, 귀신, 부주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온 병이 있습니다. 오늘 기적을 베푸신 곳은 베데스다 못 가였습니다.
1. 베데스다 못은 은혜와 자비의 집. 즉 교회입니다.
왜? 교회가 필요합니까? 교회는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예수님)의 자기 피로 사신 곳 입니다” (행 20:28) 흉악한 이리떼로 부터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행 20:29) 교회는 양들이 살아가는 목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들이 먹는 꼴입니다. 목사는 양을 치는 목자 혹은 목동입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 같은 곳입니다. 온갖 동물 짐승들이 다 모여 있는 곳입니다. 시끄럽고 더럽고 요란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와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홍수로 인해서 다 죽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와야 삽니다. 베제스다 못 (교회) 천사가 가끔 내려옵니다. 그러면 못의 물이 동합니다 (움직입니다) 그 때에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면 어떤 병에 걸렸든지 간에 낫습니다. 불치의 병을 앓은 사람이라도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면 고침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못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소망을 가지고 이곳에 온 것 입니다. 많은 병자들 각종 병에 걸린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습니다. 은혜의 집에 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복음입니다. 이곳이 교회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엡 2:8-9)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노력하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제일 먼저 내려가면 무슨 병이든지 다 났습니다. 누구의 도움이 없이 먼저 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 받고 약 먹으면 낫는 병도 있습니다. 수술하면 낫는 병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치료가 불가능한 병도 있습니다.
3.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와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나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했습니다. 돈도 없었습니다. 38년 동안 치료했으니 돈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돈이 없으니 베데스다 못에 찾아 온 것입니다. 마지막 소망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마저 할 수가 없습니다. 38년된 병자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먼저 갑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력에서 떨어집니다. 노력해서 다 되는게 아닙니다.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으나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질병이니 생사화복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38년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그러나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어보나 마나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묻습니다. 예수님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억지로 역사하지 않습니다.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롬 10:10-12)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죄의 문제는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 9:22)
4.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만 만나면 운명이 바꿉니다. 38년 된 병자에게 “네 자리를 들고 일어나라” 문제는 깨끗하게 해결되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막 5:41-42)을 살려 주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려 주셨습니다. (눅 7:13-15) 소경 바디매요의 눈도 뜨게 해 주셨습니다. (막 10:51)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소망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