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정해졌다. 이것이 대세다. 때로는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도 있다. 운명은 문자 그대로 생명을 운전한다는 뜻이 있다. 운전대를 내가 잡는 것과 운전대를 하나님이 잡는 것 두 개의 운전방식이 있을 수 있겠다.
운명은 성경대로 되지만 그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성령을 통해 나타난다. 이것이 운명을 결정하고 삶을 살아가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예수가 저주받은 운명을 복된 운명으로 옮기는 전환점에 있었다는 점이다.
예수를 믿었으면 운명이 바뀐 것이다. 나와 아무 관계 없이 운명이 바뀌었다. 이것이 복이다. 나는 예수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허용된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십자가의 용서에 의한 것이다. 살인죄도 간음죄도 10 계명을 범한 모든 죄도 모두 용서된다. 또 하나는 주 뜻을 이루며 살려는 성도의 의지로 인하여 모든 것이 허용되는 나라가 성경의 진리의 나라다. 그러니 운명이 바뀐 것은 분명하고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 주 예수께서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은혜로 산다. 하나님의 생각으로 산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일이다. 기도는 성경을 읽게 만든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마음은 성령을 통해 알려진다. 사람의 약점은 자신의 습관이 타인들을 피곤하게 하는지 모른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하고 기도는 성령을 불러드리고 내 마음의 중심에서 떠오르는 성령의 생각을 알아차리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감옥에 들어가 있었다. 예루살렘 유다가 포로가 된다는 예언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는 늘 상 이렇게 사는 제사장이었었다. 그런데 그 제사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형식적 제사에 그치지 않았었다.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가르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고 하셨다. 예레미야는 70년 역사를 결정짓는 역할을 하게 되었고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그가 석방되었다.
운명은 기도하는 중에 계속 바뀐다. 운명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역사를 일으킨다. 운명은 예수께로 가면 성령의 안내를 받기 시작한다. 성경은 제비를 뽑았다. 그것을 운명처럼 알고 살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 예수는 예언을 따라 오신 십자가의 운명을 지러 오신 분이었다. 운명은 피하지 않고 지는 것이 좋다.
예수, 그 운명은 성령과 함께 다시 살아났고, 그로 인하여 모든 사람 모든 창조질서의 운명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바뀌었다. 하나님의 뜻을 가진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그 뜻을 말하고 사는 일이 그의 일생이었다.
그가 이미 다 이루었다. 자신의 운명이 싫은 사람들은 예수를 믿고 예수와 함께 그 운명을 함께 가면 된다. 어떻게 갈까? 답은 하나다. 주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일이다. 다니엘은 바벨론포로로 살았다. 그는 창문을 동으로 열고 하루 세 번씩 기도했다. 그일이 역사와 세계사의 흐름과 정부의 모든 정책을 바꾸었다. 한 사람의 변화된 운명에 따른 기도의 결과는 그런 것이다.
다니엘의 어떤 결과들은 그의 게으르지 아니한 기도의 결과로 보인다. 요셉은 노예로 애굽으로 팔린다. 애굽은 세계의 곡물창고다. 요셉이 거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요셉의 운명을 바꾼다. 노예가 총리가 된다, 총리는 환상을 받았고 수년 동안의 흉년을 통해 온 세계의 부를 다 불러 모은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다. 요셉은 감옥에서 보디발의 아내의 집에서 그리고 형제들을 만나기 전에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을까 짐작이 간다.
유다민족이 전멸된 뻔 한 위기 속에서 에스더라는 여인이 있었다. 여성의 지혜와 미모는 이렇게 쓰일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 때문에 치이거나 엮이지 말고 하나님의 방식 앞에서 죽으면 죽으리라고 살면서 하나님을 택하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오늘날은 순종하는 여인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익을 따진다.
페르시아의 하만은 권력의 2 인자고 권력승계를 할만한 아들을 10명이나 가지고 있었다. 모르드개라는 사람은 에스더의 외삼촌이다. 그는 우상앞에 절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성경이 사랑하는 첫 번째 자격을 갖춘 사람으로 불러도 된다.
그는 하만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이것이 화를 불렀다. 하만은 그로 인하여 모르드개와 유다민족 전부를 몰살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모르드개는 이 사실을 에스더르 통해서 듣고는 긴급조치를 발동한다. 모든 유다인은 어디에 살든지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기도했고 하만은 페르시아의 평화를 무시하고 개인의 욕구충족을 위해 권력을 남용했고 나라의 재산을 사용했다는 죄목으로 50피트 높이의 장대에 매달려 죽게 되었고 그리고 그의 아들 10명도 모두 장대에 매달려 처형 되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 모르드개의 열심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했다. 그가 옳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예수로 운명이 바뀐 사람들의 삶을 보면 안티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바뀌었으면 선교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다. 예수 믿자는데 이유가 너무 많다. 여전히 제비뽑기를 믿고 사는 세상의 운명의 방식에 묶여 있는 것 같다. 예수는 나의 삶을 도와주는 사람이면 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삶을 살고 내가 나의 삶을 책임지면 된다는 생각으로 산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운명이 될 것인가는 훗날에 알게 된다.
성경의 경고는 언제나 친절하다. 선교적인 삶이란 순종의 삶이다. 기도와 성경과 사역의 세가지를 가지고 의인의 생각과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 안정되고 평안한 삶의 방식을 따라 고난도 슬픔도 영광도 감사도 행복도 함께 그 진가를 발휘하게 할 수가 있다. 순종이 최고다. 예수를 잘못 배운 것이다.
영적전쟁을 배우라! 뱀과 짐승과 거짓선지자라는 단어들은 악한 영들의 세계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알종의 상징적인 언어들이다. 이 악령들의 우두머리가 용이다.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이 아니라고 했을 때 영적 싸움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스스로가 거짓 선지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기도하는 첫 번째 이유다.
그리고 뱀과 짐승의 단계가 있다. 이들은 서로 자기들끼리 싸우는 영들이다. 부부싸움같은 관계적 싸움 같은 것이다. 짐승은 뱀을 이긴다. 그리고 마지막 영적 전투가 용과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가히 영적 전쟁의 결승전과 같아서 최후의 전투를 벌이는 자세로 싸울 필요가 있다.
진짜 운명은 그 용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이후에 얻어진다. 싸워서 이겨라! 주가 함께하신다. 이후에 최후에 바뀌는 운명이다. 그러면 모든 전쟁은 끝이 난다. 이것이 운명을 이기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 어찌하면 좋을까!!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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