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스기야 왕 이야기
히스기야 왕은 남유다의 15번째 왕입니다. 남유다 22명, 북이스라엘 19명 왕 중에서 가장 선하고 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왕이였습니다. 왕이 된 뒤 제일 먼저 한 일은 성전의 문들을 열고 보수하였으며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모아 성전을 정화하도록 명령하였다. 그리고 우상숭배를 금했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즉 믿음생활을 똑바로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요. 나이 들어 죽게 된 상황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뜻밖의 일입니다.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매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그에게 나아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집을 정리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왕하 20:1) 이 말을 들은 히스기야 왕은 하늘이 노랗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때 히스기야왕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 하더라” (2-3절) “얼굴을 벽을 향하였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았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간절히 부르짖는 히스기야 왕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왕하 20:5-6)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삼 일만에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겠고, 내가 네 날을 십오 년을 더할 것이며 내가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구원하고 내가 나를 위하고 또 내 종 다윗을 위하므로 이 성을 보호하리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우리가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눈물 없는 기도를 할 때가 많습니다. 눈물 없는 기도는 간절하지 못한 의미이겠지요.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행한 사람들의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어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눈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2. 여호수아 이야기
진퇴양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은 젊은 후계자로서 요단을 건너 첫 성인 여리고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함락시키고 승승장구의 기분으로 다음 성인 아이성을 치러 올라갔었습니다.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이성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적은 수의 군대를 이끌고 쉽게 점령할 줄 알고 올라갔다가 그야말로 참패를 당했습니다. (여호수아 7장) “여호수아가 옷을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 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 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 (6-7절) 절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왜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했습니까?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을 거역하고 바친 물건 중에 도적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아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리고성을 함락하면 아무것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시날산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과, 50세겔의 금덩이를 탐내어 숨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한계상황의 벽은 두 가지 경로로 올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히스기야왕 처럼 정직히 행하는 중에도 올 수 있고, 여호수아의 경우에서처럼 가정과 식구들 중에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도적질 해 갈 때 그럴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3.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이런 저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해답을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찾게 됩니다. 오늘 빌립보서에서 하시는 말씀을 잘 기억하고 그대로 믿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신 말씀입니다. 바울도 여러 번 한계상황에 처했었습니다.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14일 동안 바다 한 가운데서 먹지도 못한 채 방치된 상태에서 살 소망은 전혀 없이 포기 상태에서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습니다. 춥고 헐벗은 생활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때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임을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어떤 환경에서도 지켜보고 계십니다. 가난 중에서도, 부한 자리에서도, 배고픔과 배부름의 일체의 비결을 바울은 이제 배웠다고 하면서 나는 이제 어떤 환경에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 있게 고백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13) 이 말씀을 풀이해 보면 이렇습니다. 나는 무능하지만, 내 안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그 분,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가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신앙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확고부동한 신앙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내게 능력 주시는 그 분 안에서”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질 그릇 같이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능력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먼저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는 일이였습니다. 총독 스룹바벨은 온 힘을 다해서 성전 재건을 힘썼으나 쉽게 재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십니다. “힘으로 능력으로도 할 수 없느니라. 다만 여호와의 신으로만 가능하느니라” 그러니 네 힘으로만 하려고 하지 말아라.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전이 재건됩니다. 비록 내가 감옥 안에서 매인 몸이긴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감옥 안에서도 자유 할 수 있고, 감옥 안에서도 전도할 수 있고, 감옥 안에서도 기뻐할 수 있다. 나는 감옥 안에서도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다.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때로는 당장 눈앞에 어떤 결과가 없어도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은 세속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의 자유함 입니다. 영혼이 기뻐함입니다. “시합 중에는 점수를 말하지 말라” 미국 속담이 있습니다. 중간에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수도가 발달하기 전에는 펌프를 사용하여 물을 퍼 올렸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사용하지 않아도 펌프는 아무리 펌프질을 하여도 물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땅 속에 물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펌프에 물이 말랐기 때문입니다. 땅 속의 물을 펌프로 끌어올리는 데에는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마중물이라고 합니다. 마중물을 펌프에 붓고 펌프질을 하면 지하수가 펑펑 올라 옵니다. 지금 우리는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면서도 신령의 펌프가 메말랐기에 은혜의 생수가 솟아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부어야 할 감사의 마중물까지 마시고 살려고 하니 샘물이 날마다 새롭게 솟아 오를 수 없는 거지요. 강철왕 카네기는 이렇게 간증합니다. “하나님께 헌금 드릴 때마다 내 형편에 조금 부담이 될 만큼 드렸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관리에 부담이 될 만큼 부어 주셨다”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도 이렇게 고백합시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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