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은 오늘도 무언가를 따라간다.
좋은 사람을 따라가기도 하고 나쁜 사람을 따라가기도 한다.
선을 따라가기도 하고 악을 따라가기도 한다.
유행을 따라가기도 하고 신념을 따라가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든지 본받고 싶은 사람 본받고 싶은 목표가 있다.
어려서는 위대한 위인전을 읽고 그 위인을 모델로 삼고 따라가기도 한다.
따라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따라간다는 말은 자신의 뜻을 버리고 따르고자 하는 대상의 가르침과 인도함을 따르는 삶이다
삶의 방향을 바꾸는 헌신적 삶이다.
문제는 따르는 사람과 목표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종착지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라가는 삶에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 있고 장애물이 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제자들에게 강 건너편으로 건너라는 예수님의 명령이 있다.
거기에 보면 “무리가 에워싸는 것을 보시고 건너편으로 가기를 명령하셨다.”(18)
“건너편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것은 우리가 마땅히 가야 할 곳으로 건너가라는 것이다.
현실에는 우리를 에워싼 아픔과 고통과 복잡한 여러가지 일들이 있고 사람들 때문에 복잡하고 어지럽고 힘들다.
그럴 때는 주님께서 건너편으로 함께 건너 가라고 하신다.
건너편은 분명히 건너라고 명령하신 우리의 주님이 함께 하신 곳이다.
따르고자 하는 대상을 따라 고난의 강을 건너가는 길은 노를 저어가는 수고와 거스르는 바람을 잘 견뎌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갈릴리 가버나움의 건너편으로 가려고 하는데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로 나왔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아뢰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따르리이다.”(19)
이 서기관은 예수님을 따르며 그분의 삶을 좇아가고 인격과 삶을 닮기 원했다.
그러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다.
예수의 대답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따르는 일에는 많은 고통과 고독과 어려움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그가 인식치 못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겉보기에 좋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는 길은 어떤 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으로 정해진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를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음으로써 대신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셨다.
우리의 소유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그분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
두번째로 우리가 주님을 따라갈 때 반드시 집고 넘어갈 것이 있다.
문제는 주님을 섬기는 일과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가시밭길이라는 사실이다.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이다.
편한 길이 아니라 고난의 길이다.
그 길을 따라가는 가장 큰 방해거리는 내 자신이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그러므로 주님을 따라가려면 먼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내가 하려고 하지 않고 주님께 맡기고 의지하는 길이다.
나의 명예를 뒤로 하고 주님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길이다.
나의 유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주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목숨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내 생명의 주인이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삶이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
내 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장하는 길이다.
이것이 따라가는 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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