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던 삶의 방식(方式)은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44-45)
예수님 자신을 가리켜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소개하신다. 예수님 자신을 보내신 분은 아버지이시다. 부르신 목적은 반드시 보내심을 받기 위함이다. 보내심을 받은 자는 반드시 보내신 분이 계신다. 사명을 받은 사명자는 사명을 주신분이 반드시 계신다. 보내심을 받은 아들은 보내신 아버지의 명령을 받았다. 그 “명령”이 곧 사명(使命)이다. 그러므로 보내심을 받은 아들은 보내신 아버지께서 하라고 하신 말씀만 하셨다. 이것이 이 땅에서 아들이 살았던 삶의 방식이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요12:49)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고백이시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하신 모든 말씀은 한 마디라도 자의(自意)로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명령하신 말씀만을 그대로 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하신 모든 말씀은 곧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시며 영생의 말씀이다. 결론적으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이다.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고 하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가장 기쁘고 가장 평안하고 가장 능력 있는 삶이다.
예수님의 훈련을 받았던 사도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다.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벧전4:11)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이 시험을 받은 이유는 말 때문이다. 왜 사람들이 말 때문에 시험을 받을까?
하나님의 말씀을 하지 않고 내 생각으로 마음대로 말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많이 시험이 든 경우는 교회에서 봉사를 하다가 시험을 당하는 경우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으로 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의 부르심과 보내심을 받았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경의 말씀대로 말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봉사를 하려면 성령의 능력과 감동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과 십자가에서 연합했다면 우리는 예수님과 부활하는 삶을 살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과 연합의 삶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내 말이고 예수님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된다. 그럴 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고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셨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요15:5)
이런 사람이 능력의 사람이다. 왜? 가지가 나무에 붙어만 있으면 자연적으로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붙어만 있으면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다. 붙어만 있으면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다. 부르심은 반드시 보내심을 위한 것이다. 보내심은 반드시 사명이 주어진다.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명은 무엇이었는가?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46)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 빛으로 오신 이유는 이 세상이 어둠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캄캄한 어둠이었기 때문에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셨다. 온 세상 사람들이 영적인 맹인들이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였고, 보고자 하여도 보이지 않았고, 보고 싶어도 어둠 속에 있으므로 볼 수 없었다. 눈을 뜨고 보려고 해도 온통 어둠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해 주실 때 마다 “보라”고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어둠이 사망이라면 빛은 희망이며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볼 수 없는 하늘나라를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게 하셨다. 절망 속에서 희망의 빛이 되셨다. 그렇다. 빛으로 연합하면 우리는 빛 가운데 사는 것이다. 빛 가운데 있으면 빛이 된다. 빛이 될 때 비로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4)는 우리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숨길 수 없는 “산 위에 있는 동네”가 되어 세상의 빛이 된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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