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다. 가족은 가정에 소속되어야 한다. 회사원은 회사에 소속되어야 한다. 휴스턴 사람은 휴스턴 지역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인은 미국이라는 국가에 소속되어 있다. 소속과 개인은 뗄 수 없는 관계성을 가진다.
소속감이 분명하지 않으면 책임감이 사라진다. 이탈자가 되고 배신자가 되고 스파이가 되고 여기저기를 헤메며 남의 집 울타리를 넘보게 되고 결국 길잃은 양이 되어 이리의 먹이감이 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소속의 한계를 넘었기 때문이다. 잠언서에 보면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로 명령을 거스리지 못하게 하셨다”(8:29)고 말씀한다. 물에서 살아야 할 물고기가 뭍으로 가서 어찌 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의 한계를 정하여 살게 하셨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량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살라”(10:13)고 하신다.
참 놀라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일 예배는 A라는 교회를 출석하면서 새벽기도는 B교회로 가고 수요예배는 C교회를 다닌다는 것이다. 얼마의 세월이 흐르자 A, B, C교회에서 불평하는 각각 2명씩을 데리고 D라는 교회로 단체로 가서 전도사 임명을 받아 또 2명의 콩고물까지 무쳐 나와 교회를 개척했다고 한다. 교회개척을 하려고 계획적으로 벌이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되겠는가? 모두 교회의 소속감이 없어서 그렇다. 교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소치이다. 교인은 교회의 소속이 분명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가지들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 자연적으로 영양분을 얻어먹고 열매를 맺힐 수 있다고 강조하셨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라는 뜻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가지들 같은 교인들은 반드시 몸 된 교회에 소속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실 때 소속감을 분명히 하셨다.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 소속하여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기를 원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었다. 행복을 지속시키려면 소속감을 지켜야 한다. 기쁨을 지속시키려면 소속감을 지켜야 한다. 교제를 지속시키려면 소속감을 지켜야 한다. 소속감을 벗어나는 순간 행복도 기쁨도 교제도 사라진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마귀에게 속한 순간, 하나님께 속한 아름다운 교제와 기쁨의 동산과 행복한 삶이 끝장나고 말았다. 그로인하여 인류는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 노릇을 하면서 죄로 인하여 사망 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그런 우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려고 창세전에 계획한 구속의 사역을 위하여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지고한 희생의 사랑으로 인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의 제물이 되시므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다. 예수님께서 잃었던 행복을 회복시켜 주셨다. 다시 하나님께 속한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다. 성령 하나님께 속한 교제를 회복시키 주셨다.
성도에게 주신 삶의 소속과 한계는 무엇인가? 예수님 안에서(In Christ) 소속되어 살도록 하셨다. 예수님을 벗어나지 말고 예수님께 소속되어 그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라는 뜻이다.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여 끝까지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요17:12)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17:11)
그리스도와 “하나되라”는 뜻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소속감을 분명히 하라는 말씀이다. 가지들은 포도나무의 원가지에 붙어 살라는 뜻이다. 그래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지킨다”(Keep, Protect)는 말은 “보존하다”(Care)는 말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강한 뜻을 가진다. “지킨다”는 히브리어 “솨마르”(שָׁמַר)와 “지킨다”의 헬라어 “테레오”(τηρέω)는 시편23편에서 목자가 양을 지킨다는 뜻이다. 목자의 임무는 양을 지키는데 있다. 목자는 눈을 부릅뜨고 양떼들이 잘 있는지 양떼들이 아프지 않는지 악한 이리떼들이 틈타지 않는지 바라보고 있다.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다. 만일 한 마리의 양이라도 길을 잘 못 가면 즉시 찾아 나선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마18:12/눅15:4)
이처럼 목자에게 소속한 한 마리의 양을 끝까지 적극적으로 찾으신다는 뜻이다. 목자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지켜 주신다. 그렇다. 우리는 주님의 양떼들이다. 양의 우리 안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목자의 보호함을 받을 수 있다. 양은 양떼들에게 소속되어 있을 때 풍성한 만족을 얻고 목자의 보호함을 받을 수 있다. 시편 23편에서 목자의 지팡이는 악한 짐승을 막아주고 내어 쫓아 주기 위하여 사용하신다. 목자의 지팡이는 나를 지켜 주신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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