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커뮤니티 안에 있고 커뮤니티는 교회 안에 있다. 교회와 커뮤니티는 하나의 도시를 만든다. 교회의 독특한 역할도 있겠지만 교회는 커뮤니티에 소속 되어 있다는 입장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도 있다.
성도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살고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상사람’이라는 말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교인을 벗어나서 세상과 사람들 틈에서 빛이 되라는 말이 되겠다.
커뮤니티와 교회는 같은 도시 안에서 서로 연결된 한 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커뮤니티는 하나님의 선교적 몸이라는 더 넓은 단위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교회는 영혼을 구원함과 동시에 사회적 책임과 의무도 늘 따른다. 그래서 무겁다. 성도는 위에서 오는 상급이 있기 때문이다.
연말이 다가오며 11월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이 날은 한국에서처럼 아마 가장 큰 명절일 것 같다.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처음 미국의 추수감사절때는 눈물로 적신 빵을 먹었었다. 이제 미국은 시골에서 대도시에 이르기까지 분수에 맞는 감사를 보여주는 나라가 되었다. 기업들은 한해 동안의 이익들을 여러 모양으로 사회에 환원시키고 있다. 미국의 나눔의 정신은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HEB는 택사스 중남부를 중심으로 한 대형 슈퍼마켓이다. 마켓은 원래 사람들의 생활의 중심지였다. 크게 보면 모든 생활경제의 가장 중요한 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월마트도 좋지만 지역친화적인 기업들이 얼마나 귀한가를 본다. 시장은 도시를 이끄는 진정한 리더일 것이다.
HEB는 해마다 텍사스 내 25개 도시에 다른 날짜를 택해서 커뮤니티에 대한 ‘Feast of Sharing’ 행사를 치룬다고 한다. 필자가 사는 맥알렌 지역은 컨벤션 센터에서 음식과 공연들을 준비하고 모여드는 수 많은 지역 주민들을 정성으로 봉사한다. 공연과 자원봉사단들 그리고 커뮤니티 안전 요원들이 함께 잔치를 준비했다.
가족단위로 함께 모인 주민들의 행복한 모습들을 본다.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감사하면 된다. 밥 한끼 먹으면서 서로 얼굴들을 마주 하고 앉아 하루 즐겁게 보냈으면 된다는 모습들이다. 험난한 경제환경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리던 동네 작은 가게들도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누면 더 좋다. 정당하게 많은 이익을 남긴 기업이 정당하게 이익을 사회와 환원하는 모습을 모면서 소상공인들도 같은 마음이면 될 것 같다. 흐믓한 도시의 가을 풍경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그런 도시를 만들었다. 무슨 말이냐면 성경이 커뮤니티와 교회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종교와 커뮤니티가 동전의 양면이었다. 도시 안에서 하나였다. 칼빈은 성직자는 성직자로, 공무원은 공무원으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아무런 차이가 없이 커뮤니티 안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신앙생활이라고 본 것이다. 제사장이 따로 있었던 것도 아니다. 만인이 제사장이었다. 그리고 도시 정부는 이러한 관계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기독교 윤리는 그동안 너무 사변적이었다. 기독교는 행동하는 믿음의 종교다. 믿음은 사람을 행동하게 만든다. 당연한 것 아닌가.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면 가는 것과 같다. 십자가 예수의 죽음은 행동하며 살라는 메시지다. 이의가 있을까? 오히려 기독교는 예수를 이미 잃어 보고 빼앗겨 본 적이 있는 종교이기 때문에 이제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종교이다.
우리가 크리스챤이 되었다는 것은 유불리를 계산할 필요가 없다. 우리들의 주인이 예수님이다. 종이 된 우리가 ‘우리끼리 안에서 갇혀 있다면’ 그 얼마나 답답한 일인가. 지금 당장 돕고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말이다.
시청에 가서 물어 보자. 자원봉사의 일은 얼마든지 있다. Salvation Army에도 가보자. 할 일이 너무 많다. 인생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오른손이 했던 일을 왼손이 모르면 그것이 최고의 봉사이다.
조지아 시골마을의 지미 카터 전대통령은 지금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할 것 같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기회가 교회에 가면 있다. 그리고 노인들을 도울 수 있는 길도 여기 저기 많다. 세상은 세상이 보지 못하는 것을 교회는 가지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커뮤니티는 그것을 원한다. 교회와 커뮤니티의 벽이 없을 때 구원의 희망은 빛을 발할 것으로 믿는다. 교회가 커뮤니티에 닫혀 있고 해외로만 열려있다면 예수님도 고개를 갸우뚱하실 것 같다.
예수님의 부활은 더 강력한 멧세지를 가지고 있다. 부활을 정의해 보자. 모든 것을 완성하기도 했지만 모든 것을 폐하시기도 했다. 모든 것이 끝이 났었는데 부활했다면 이제 그 누구도 나를 위해 내 것으로 살 권리가 없다는 말이 된다. 부활이 적어도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말했다면 교회와 도시는 커뮤니티를 봉사하는 일로 부름 받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은 구구단이 틀리면 안 되듯이 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는 사이비 자원봉사는 늘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커뮤니티 역시도 정당하지 못하는 방법과 공정하지 않는 부의 축적으로 나오는 기부들도 경계 해야한다. 사람을 도둑질해가는 종교는 악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 커뮤니티에 환원한다는 것 또한 옳치 않다. 도둑질해다가 이웃을 돕는다는 것은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감사의 계절에 평화를 위해 그리고 커뮤니티를 위해 무엇을 환원할 것인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축복을 빈다.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이근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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