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두 사람이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기 위해 꽃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꽃가게에서 논쟁이 붙었습니다. “꽃을 선물하면 꽃을 사는 사람이 행복할까? 아니면 꽃을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결론이 나지 않자 꽃가게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 것 같습니까?” 꽃가게 주인은 빙그레 웃으며 “꽃을 판 내가 제일 행복하지요” 그러더랍니다.
복음을 위해 사는 것도 행복이지만 우리가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제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영국 격언에 “하루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라. 일주일 동안 행복하고 싶거든 결혼을 하라. 한 달 동안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일년을 행복하려면 새 집을 지어라. 그러나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여라” 고 했습니다. 지금 행복한 분들은 어떤 일로 행복하신지요? 미장원에 갔다 와서 행복한가요? 결혼해서 행복한가요? 자동차를 새로 사서 행복한가요? 새 집을 사서 행복하신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정말로 행복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기쁨을 행복이라는 말로 바꾸면 “항상 행복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 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1.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라는 도시는 로마가 지배하면서 모든 것을 로마화 했습니다. 그리고 빌립보에 사는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로 이사를 가는 로마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빌립보는 로마가 되었습니다. 빌립보 사람들에게 준 새로운 특권이요 혜택이 바로 로마 시민권을 준 일입니다. 그러면서 빌립보 사람들에게 이제 로마 시민이니 로마 시민답게 살라고 강조를 했습니다. 바울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라 하는 말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답게 살아라 하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우리는 천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천국 시민답게 살아야 합니다. 예배하는 날과 사회생활 하는 날이 구분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똑 같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나 사회나 같아야 합니다. 학생은 공부로 예배합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일하며 예배합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예배합니다.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각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라는 의미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그 말은 “너희의 착한 행실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착한 행실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착한 행실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레슬리 뉴비긴” 이라는 선교학자는 “성도”와 “성경”을 “번역”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으로 번역되었으나 동시에 성도의 삶으로도 번역됩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10%는 성경을 봅니다. 그리고 90%는 그리스도인을 봅니다. 성경의 번역보다는 번역된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참 두렵지 않습니까? 내 삶이 그리스도의 삶과 하나님의 말씀을 오역할까 봐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위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셨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불완전한 우리와 교회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다 설교자입니다. 설교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이 설교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약 2:17-18) 중요한 것은 무엇을 믿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믿는 그 믿음으로 무엇을 하느냐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느냐 아니냐입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히 12:2)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생깁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생깁니다. 믿음은 말씀대로 행동할 때 생깁니다. 교회는 훈련소입니다. 훈련소는 군인들을 훈련시켜서 전쟁에서 쓸 수 있는 군인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쟁에 나가서 군인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훈련을 받아 그리스도의 군사로 쓰임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학교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여 그 지식으로 세상에 나가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을 배워서 하나님을 실천하고 살아가라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회는 병원입니다. 영혼을 병을 치료받아서 사회에 나가서 건강하게 일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대장간입니다. 대장간은 쓸모없는 쇠 덩어리 가지고 연장을 만들어 귀중하게 사용되라고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쓸모있는 믿음의 병사 도구가 되어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목적은 예수님이 하실 일을 우리에게 하라고 교회를 세우신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 4:18-19)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수족관 관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직분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헌신을 위한 것입니다. 봉사를 위한 것입니다. 충성을 위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많은 직분이 있어도 그 직분의 최종 목적은 오직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바르게, 아름답게 세우는 것입니다.
2. 협력하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7절 하)
“협력한다”는 단어는 군사적 의미가 강합니다. 그것은 “함께 경기한다. 한 팀으로 함께 싸운다” 라는 뜻입니다. 협력한다는 단어를 “한 마음으로. 한 뜻으로”가 수식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마음으로, 한 뜻으로” 는 바울이 자주 반복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생각과 행동에 있어서 서로 한 몸처럼 연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특히 “한마음은 한 성령으로”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성령 안에서 복음을 위해 협력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가 복음을 위해 협력하여 하나되는 모습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시민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그리스도안에서 협력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분열되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위하여 하나가 되도록 협력하여야 합니다. 예배하고, 전도하고, 교제하고, 봉사하고, 헌금하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협력은 협동 이상의 뜻을 가집니다. 협동은 동의하에 일하는 것이지만, 협력은 자발적으로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협력이지 협동이 아닙니다. 부디 협동하는 자가 아니라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자동차가 만들어진 목적은 자동차에 탄 사람들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이동하기 위해서입니다. 시계가 만들어진 목적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지요. 연필이 만들어진 목적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복음대로 살아가므로 복된 인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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