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당시 개신교인들의 활동은 조선의 독립운동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인물 중에는 손병희, 최린, 권동진, 오세창 같은 핵심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독립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조선 전역에 독립 선언서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배포하는 결정을 내렸다.
고종 황제의 사망은 조선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강화시켰다. 이 분위기 속에서 일본 동경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독립운동 회의를 개최하고 독립의 의지를 전 일본에 천명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이 회의에 참여한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으며 독립선언문을 한국 내부로 밀반입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 평양, 정주는 3.1운동의 중심지였고, 천도교와 기독교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천도교의 손병희는 독립운동을 대중화하고 비폭력으로 진행할 것을 강조했다. 개신교 측에서는 최남선이 다른 종교 지도자들과 협력하여 독립운동을 준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3월 1일, 인사동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고, 파고다 공원에서는 학생과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통해 독립의 의사를 천명했다. 이 시위는 평화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일제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비극적인 일이다.
일제의 강경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지도자들과 교회는 독립운동의 중심 세력으로 남았다. 일제의 만행은 전 세계에 알려졌으며, 특히 제암리 교회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은 일제의 무자비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외국 선교사들도 이 운동에 동조하며 한국인들의 독립 의지를 지원했다.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미국 내 여러 교파가 한국 독립을 위한 기도를 하기로 결의했고, 한국의 독립운동은 국제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3.1운동은 기독교 신앙이 민족운동의 형태로 발현된 전형적인 사례로, 비폭력 운동의 일환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니며, 기독교 지도자들과 기독교인들이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기억될 필요가 있다.
텍사스에 사는 한인들과 기독교인들에게 이 역사적 순간을 기억하며, 우리 조상들의 불굴의 독립 정신과 개신교가 한국 근현대사에서 해온 역할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 부디 서로를 격려하고 지원하며, 우리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한국인의 긍정적 이미지와 함께 기독교의 복음적인 삶을 사는 데 앞장서는 것이 105주년 3.1절을 앞둔 우리의 책임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ANCSA 온누리교회 부목사 손대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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