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구원의 핵심도 십자가와 부활이다.
부활의 선조건은 먼저 죽음이다.
죽어야 부활이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다.
우리 대신 죽어야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은 절망적인 상태였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 인생을 완전한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되는 상황을 허락하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다면 그 절망도 축복이다.
왜? 하나님이 허락하신 절망은 반드시 회복을 전재로 허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허락하셨다.
왜? 예수님의 죽음은 반드시 부활을 전재로 하기 때문이다.
요셉은 10대초반의 어린 시절에 형들에 의하여 미디안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려 애굽에서 바로 왕의 호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살았다.
힘없는 노예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13년 동안이나 1급 중범죄인의 감옥생활을 하도록 허락하셨다.
요셉에게 절망적인 상황을 허락하신 것은 회복을 전재로 한 것이었다.
완전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요셉을 일으켜 바로왕의 인인지하만인지상(一人地下萬人之上)의 국무총리가 되어 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게 하셨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였지만 살인자가 되어 미디안 땅 외갓집으로 도망하여 이르도의 양무리를 40년동안이나 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잊혀 져 갔다.
더 이상 모세를 기억한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40년동안 절망적인 상황으로 허락한 것은 회복을 전재로 한 것이다.
나이 80이 되었을 때,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노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게 하셨다.
모세의 나이 40세의 혈기 왕성할 때는 자기 힘으로 하려고 살인을 했지만, 나이 80이 되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꼈을 때 이제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 일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으로 말미암아 바벨론에서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다.
하나님이 70년 포로생활을 허락하신 것은 회복을 전재로 한 것이었다.
바벨론 포로생활 후에 하나님은 극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셨다.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포로들을 다시 본국으로 귀환 시키시고 성전과 성벽을 다시 재건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Again의 하나님이시다.
죄인이 회개하면 Again 용서해 주신다.
기도하면 Again 응답해 주신다.
예수님은 언제 이 땅에 오셨는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동안 선지자도 예언의 말씀도 하나님의 임재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 캄캄한 암흑기였다.
이런 400년 동안 절망적인 상태를 허락하셨다.
400년의 암흑기는 Again 이스라엘의 회복을 전재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400년 암흑기를 깨시고 우리 구주 예수님을 보내셔서 온 인류를 다시 구원해 주셨다.
그렇다.
오늘 누군가 절망적인 상태에 놓이지는 않았는가?
만일 그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축복의 기회일 수 있다.
왜? 그것은 하나님께서 회복을 전제로 하시기 때문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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