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악을 제거하려고 한다.
강아지가 내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아 물고 달아난다고 쫓아가서 제거해야 할까?
이는 넉넉함이 없는 사람이다.
넉넉함이란 옆 사람의 허물을 포용하는 것이다.
넉넉함은 이웃의 허물이 보여도 넉넉함으로 보아 넘겨주는 것이다.
사랑이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는 것이다.
어머니는 악한 자식이라도 허물을 감싸주고 넉넉함으로 품어준다.
만일 어머니가 악을 제거해야 한다는 전제하여 자식의 악을 제거해야 한다면 과연 자식이 어떤 사람이 되겠는가?
과연 이 사회가 어떤 사회가 되겠는가?
그 이웃을 품고 넉넉하게 품고 대해주는 것이 기독교정신이다.
Context(현재의 상황)라는 말은 두 단어가 합하여 Context가 되었다.
Con이란 말은 관계를 가지고 대화를 한다는 의미이고 Text란 내가 변경할 수 없이 주어진 명제 혹은 주어진 사람들이다.
Text가 악하다고 제거해야 할까?
Text가 악하더라도 대화(Con-versation)을 통해서 덮어주고 감싸주고 오래 참는 사랑을 보일 때 악이 변하여 선이 되고 사람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지 않을까?
세상은 악도 존재하고 선도 함께 존재한다.
그들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가지고 대화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창조한 인간(人間)이다.
人(사람)은 남자와 여자 혹은 이웃끼리 서로 넘어지지 않도록 받쳐주고 기대며 산다는 뜻이다.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남녀를 창조하여 주시고 서로 돕고 배필이 되어 기대며 살아가게 하셨다.
인간(人間)이란 사람들이 이웃의 문(門)을 드나드는 관계 속에서 안에 입구(口)자를 넣어 “간”(間)자를 사용하여 서로 교통하며 대화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일하게 인간에게만 언어가 있어 말하고 기록하게 하셨다.
이것이 인간(人間)이다.
기독교 신자들 중에서 예수를 믿으면 거룩하게 되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그것과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보통 악(惡)을 제거하면 선(善)이 남는다고 생각한다.
악을 제거하면 공(空)이 남는다.
선은 다른 것이다.
악은 선의 왜곡(矮曲)이다.
보통 악은 제거하면 선이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종종 직분 받은 사람이 기분이 나쁘다고 그만두는 경우를 본다.
그만두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자기에게 준 직위를 책임지지 않고 자기 편하자고 그만두면 무능만 남는다.
왜 무능함이 남는가?
오해를 이기고 해결하려는 인간(人間)에게 주어진 대화로 풀어 해결하려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에 무능만 남는다.
악은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선을 채우는 것이 기독교정신이다.
유교사상 중에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 있을 때에 더욱 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독이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만족한 경지를 말한다.
옆 사람은 없어도 나 혼자 고고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기독교 정신과 거리가 멀다.
나의 존재는 옆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고 옆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것이 선교요 전도요 이웃을 향한 복음전파요 기독교정신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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