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마가복음 9장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변화산상의 사건에 대하여 설교를 한 적이 있다.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들은 변화산상에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공중에서 찬란한 빛으로 홀연히 변화된 모습을 목격했다.
그때 베드로는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전에는 그의 고백을 황홀경에 빠진 잠꼬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다.
중요한 포인트는 “변화”(Transfiguration)라는 단어이다.
왜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본래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보여주셨을까?
여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예수님의 본래의 존재와 우리의 존재를 깨우쳐 주셨다.
거기서 진정한 우리의 소망을 발견해야 한다.
소망은 오늘 현재에서 장래의 모습을 기다리는 꿈이요 비전이다.
오늘이 없이는 내일의 소망은 불가능하다.
“The Discovery of Being”(존재의 발견)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다.
저자는 정신 분석학자인 롤로 메이(Rollo May)라는 분이다.
이 책에 보면 사람의 삶을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한다.
첫째는 움벨트(Umwelt)라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세계이다.
사람의 행복과 불행은 오늘 환경과 나와의 관계에서 좌우된다.
둘째는 밋벨트(Mitwelt)라는 말은 누구나 공동체 안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누구나 가족, 친구, 학교, 회사, 교회 등에 속해서 살아간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세번째로는 아이젠벨트(Eigenwelt)라는 자아세계이다.
어쩌면 자아성찰적 존재 이것이 바로 인간이 아닐까?
인간문제의 가장 중요하고 우선적이고 첫번째 문제는 사실상 나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돌리고 무엇때문에 누구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성찰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다.
베드로 사도가 “여기가 좋사오니” 라는 말은 베드로의 만족이었으며 행복이었다.
움벨트(Umwelt)의 만족과 행복이었고 밋벨트(Mitwelt)의 만족과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이젠벨트(Eigenwelt)가 전혀 없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깨달어야 한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영광스러운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신 목적이었다.
오늘의 환경에서 장차 본래의 너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라는 뜻이었다.
이제 며칠 후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는 엄청난 사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변화산상의 모습을 보고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이 기다리는 소망을 가지기를 원하셨다.
고난을 극복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면 고난의 현장과 환경을 보지 말고 그 넘어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십자가의 고난이 있으면 반드시 부활의 영광이 있음을 잊지 말자.
혹시 움벨트(Umwelt)와 밋벨트(Mitwelt) 안에서 행복하지 않더라도 저 너머에 영광스러운 변화를 바라보는 소망을 가져야 한다.
이 소망은 아이젠벨트(Eigenwelt)라는 자아성찰이 먼저 있어야 가능하다는 걸 잊지 말자.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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