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세월이 가면서 지난 날들을 되돌아 되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가지고 괴로워 했구나 생각한다.
지금은 죽을만큼 고통스러워도 세월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를 깨닫는다.
우리가 초등학교에서 체육시간에 운동장 한 바퀴를 돌면 얼마나 넓고 큰지 모른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 옛날 다녔던 초등학교를 가 보면 그처럼 크고 넓었던 운동장이 아주 조그만 원 같이 보인다.
옛날에 살던 집 뒷산이 그렇게 높았던 산이 훗날 어른이 되어 가보면, 아주 작은 동산 같이 보인다.
옛날 살던 집의 담벼락이 키가 작아서 밖을 내다 볼 수 없었던 것이, 훗날 어른이 되어서 가 보면, 그 높게 보였던 담벼락이 허리에 차고 밖을 훤히 내다 보이게 된다.
담벼락을 허물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키가 크면 다 내려다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고교시절 지리산 등반을 했을 때 보면 올라가는 산은 보이지 않았었다.
1시간을 올라갔는데도 자기가 올라가는 산이 보이지 않는다.
또 1시간을 더 올라갔는데도 아직도 계속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다.
산속에서 계속 산길을 올라갈 뿐이다.
눈 앞에 있는 숲만 보인다.
그런데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 올라 확 트인 사방을 산 위에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무슨 말인가?
산에 올라가면 시야가 넓어진다.
고난이란 게 그런 것이다.
고난을 겪고 나면 시야가 넓어진다.
고난을 겪고 나면 믿음이 성숙해 진다.
여기서 우리 인생을 돌아 볼 시간이다.
어떤 사람은 쉽게 편하게 살아간 것 같고, 누구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고 살아간다.
왜 누구는 편하고 누구는 고통을 당할까?
그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에수님의 고난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신데 조롱당하고 침뱉음을 당하고 발길질을 당하고 손바닥으로 뺨을 맞고 채찍질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왜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권능과 영광과 존귀를 받으셔야할 주님께서 그런 고난을 당하셨는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히5:8).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발견해야 한다.
고난이란 영광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어야 한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엠마오로 되돌아가던 두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무어라고 하셨는가?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눅24:26).
여기에 중요한 Point가 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영광에 들어가기 위함이라는 말이다.
고난 없는 결코 영광은 없다.
고난 없는 축복도 없다.
이 세상에서 위대한 모든 사람들은 다 극심한 고난을 다 통과한 사람들이다.
온상에서 자란 체소들은 찬바람에 그방 시들어져 버린다.
고난을 단순이 고통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
고난은 도약을 위한 움추림이다.
고난은 내일의 소망을 위한 것이다.
고난은 성숙하기 위한 하나님의 훈련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할 교훈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토요와이드] 이 대통령, 美빅테크 CEO 회동…여야 내홍 격화 5 [토요와이드] 이 대통령, 美빅테크 CEO 회동…여야 내홍 격화](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Lee-0725-120x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