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란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그러나 고통이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임재범씨가 부른 “비상”이라는 가사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고독이 꼭 나쁜 것은 아니야, 외로움은 나에게 아무도 말하지 않을 소중한 걸 깨닫게 했으니까…”
고통으로 고독할 때 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된다.
야고보서에서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고 말한다.
“시험”(Temptation)을 헬라어로 “페이라스모스” (πειρασμόϛ)라고 하는데 “증명하다”, “입증하다”라는 뜻이다.
시험은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입증해 준다”는 말이다.
그리고 “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길을 인도한다”는 뜻이다.
길을 인도하는데 그냥 말로만 인도하는 게 아니라 앞서 가면서 직접 인도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시련이 지나면 좋은 일이 올 거라고 긍정적으로 소망적으로 믿음으로 가지고 나가면 우리의 길을 인도한다”는 말이다.
고통이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기에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말한다.
성경은 고난을 당했을 때 왜 기쁘게 여기라고 말할까?
야고보서는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말한다.
“온전하다”는 말은 “텔레이오스”(τελειοs)로서 어떤 결과로 인하여 “성숙해진다”는 뜻이다.
시련과 고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성숙하게 된다.
성장(成長)이란 키가 자란 다는 말이다.
나무가 키만 높이 자랐는데 단단하지 않고 쉽게 부러진다면 어디에 쓰겠는가?
성숙(成熟)이란 속사람과 성품의 변화와 내적 됨됨이를 의미한다.
어느 책에 보니까 깊이 음미해 볼만한 이런 한 가지 예화가 있다.
요즘 새롭게 잘 나가는 HP(Hewlett Packard Enterprise) 컴퓨터 회사의 첫 여성 CEO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에 대한 짧은 이야기였다.
어느 신문사 기자가 “좋아하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녀는 “베토벤”이라고 대답했다.
“모차르트는 어떠세요?”
기자가 다시 물었을 때 그는 “모차르트는 훌륭한 작곡가이고 그의 음악은 천상의 소리처럼 감동적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인간의 고뇌를 들을 수 없다. 반면에
베토벤의 음악에서는 인간의 분노와 고통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장엄한 승리가 흐르고 있다.”
베토벤은 청력을 잃어버렸던 음악가였다.
과연 무엇이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으로 만들었는가?
그가 겪은 청력상실의 고통이었다.
인상파 미술가 아구스트 르노아(Auguste Renoir)는 극심한 류마티스 때문에 화필을 손으로 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겨우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르노아를 보고 친구가 물었다.
“왜 그런 고통 속에서 계속 그림을 그리나?”
르노아가 대답했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지.”
그렇다.
고통이 없이는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달어야 한다.
No Pain, No Gain!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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