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의 계절이 시작되었고 사막의 땡볕은 용서가 없다. 다니엘의 사자굴과 불구덩이 같다. 대지를 맹폭한다. 선인장들 조차도 시들고 낙타봉에도 물들이 마르고 거기다가 비행기가 떠내려 가는 대홍수가 엊그저께 뉴스에 있었으니 종려나무 70그루의 오아시스도 사람들에게 희소식이 되지 못한 것 같다.
땡볕이나 홍수나 둘 다 좋을 것이 전혀 없다. 이는 모두 죽음을 의미한다. 한가지 생각하는 것은 구원이 그 더위와 홍수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 당시에 노아의 홍수가 엘리뇨 때문에 온 것은 아니었을 것이고 그리고 그 홍수를 의인 노아 말고는 그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노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 지는 데 걸린 시간을 120년 방주 만드는 시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노아의 믿음이 완성된 시간일 수도 있겠다. 아마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받칠수 있었던 때 그때의 믿음과 유사한 듯하다. 믿음은 어느 시점이 있으니까 하는 말이다. 믿음이 절정에 이를 때 하나님이 엘리야를 데려가듯이 데려가거나 큰 일을 내신다. 저녁이 그 절정에 이르는 출발점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된다.
저녁을 만난 사람들 중에서 아침을 만날 사람을 성경은 늘 주목했었다. 사라가 아침을 만났다. 이삭을 받았다. 야곱이, 한나가, 다윗이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랬는데 예외가 한 개도 없었다. 이 모든 일은 성경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저녁을 만났었는데 주 예수 오시고 나서야 비로소 아침을 본 것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틀림이 없다.
바닷물도 가장 뜨거운 때를 만났다. 북극의 얼음산들이 속절없이 비명을 지르며 깨져 내린다. 바닷바람을 몰고 오는 공기를 당할 찬바람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 따갑고 탁하다. 도시가 찜통이고 모든 식물들은 겨우 살아만 있다. 툭 건들면 부러지는 가지 신세로 버티고 있는 사막의 식물들은 키가 크면 생존이 어렵다. 어찌 보면 탈수가 되어 버린 인생의 끝자락을 인생의 전부인 양 알고 사는 사람들을 풍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앙이 없거나 적으면 이와 같아진다. 겨우 생존이다. 물질과 권력의 유무가 아니라, 물질과 권력의 초월이 아니라 생명의 유무를 언급하려는 것이다. 물질은 다양한 기회는 된다. 권력은 많은 일을 할 수가 있다. 사람을 사서 살리는 일을 하면 돈과 권력은 가장 잘한 일을 한 것이다.
그것이 주를 주를 위해 사용되어 지는 방법이다. 그리고 물질과 권력은 아무리 있어도 그 때 뿐이며, 물질과 권력은 사람들을 그 물질에 가두는 경향이 있고 물질은 결국 사람을 물질의 종으로 만든다는 것을 유의해야한다. 사람들이 물질에 중독되기는 쉽지만 빠져 나오기는 매우 어렵다. 이유는 분명하다. 물질이 전부 였거나 두 주인을 섬겼기 때문이다. 성령은 물질을 해방시킬 수 있다.
은혜를 사람들은 잊어간다. 그러면 안된다. 믿음은 있었는데 생명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 사람을 두려워한다. 생명은 늘 언제나 하나님을 기다린다. 영혼의 갈급이 그것이다. 갈급한 사람에게는 안으로 밖으로의 은혜가 필요하다. 안으로 골방을 지키고 밖으로 나가서 아브라함처럼 밤하늘의 창공에 떠 있는 별을 한번 보고 그리고 찬송가에 있듯이 창파에 배 띄워 은혜의 바다 저 깊숙한 곳을 향하여 나가 보는 것이다.
생명없이 히잡을 덮어쓰고서 사막의 열기는 피하면 되고, 주 예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만사가 다 해결되리라는 종교적 몽상 속에서 묻혀 살아서는 곤란하다. 직접 옷자락을 만져야 한다. 빛과 어둠이란 이것을 가르는 일이다. 몽상의 신앙이 아니라 옷자락에 직접 휘감기는 기적과 표적은 언제나 어둠을 이겼다.
그러니 하나님의 그 겉 옷자락 끝선을 통해 성령의 기운이 혈루증 여인에게 흘러 간다. 이런 순간을 그 여인은 평생 잊지 못했다. 거기에다 그 여인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주 예수의 목소리를 일생을 간직하며 시대의 어둠에 잠식되지 아니했고 비천하다던 그 몸에서 승리의 노래가 뿜어져 나왔다. 즉시 구원을 받았다. 이것이 성경전체의 요약이다.
더위와 추위가 가장 심한 곳이 광야다. 광야를 걷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까지 그 누구에게만 특별히 그늘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큰 구름 기둥의 폭이 하나님의 품처럼, 브라질의 아마존의 강폭처럼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의 길이만큼이나 길고 넓어서 수 백만명의 사람들을 뜨거운 폭양으로부터 보호하기에 충분한 그늘이었을 것 같다. 그런 그늘이 언제 또 있었을까. 태양이 빛을 잃은 것이다. 그늘을 서로 차지하려고 서로 다툴 필요도 없었다.
그런 구름기둥을 오늘날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그렇다. 구름이 생명을 지켜주었고 구름이 생명이었다. 구름이 차면 비도 내리기 때문이고 비가 내리기 전에는 천둥 번개도 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고 있음을 알게 했고 그리고 비가 내리면 모든 만물이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어갈 수 있기 때문에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체적으로 운반해가고 있었을 것 같다. 이분이 예수다. 예수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는 완전한 천국의 압축된 파일이다. 오직 성령이 그것을 연다.
그래서 땅에서 희망을 찾아서는 안된다. 혹은 인생의 그늘이 찾아왔다고 해서 그 그늘을 절망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생각인 것 같다. 그늘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시원한 얼음 냉수같은 것이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캄캄한 밤이었을 수도 있다. 위를 보면서 드리워진 그늘을 오히려 찬양해야하는 계절이다.
구름기둥 안에 그러므로 모든 희망이 다 들어있었다. 어떤 희망을 말할까. 성경이 말하는 모든 희망이 거기에 있고 그 희망에서 비가 내리고 나면 완전한 희망의 무지개가 떠오르고 그 무지개가 곧 우리 안에서 떠오르는 성령의 말씀들이다. 3일 말씀듣고 앉아있었던 사람들이 굶어 배고플까 오병이어를 행하신 주님의 사랑이 있었다. 3일 길 걸으면 열기로 기진 맥진해져서 우상과 노예의 땅 애굽세상으로 돌아간다고 또 소리지를까봐 모든 은혜와 사랑을 담은 구름기둥을 사람들에게 보냈던 하나님이다. 우리 하나님이 가끔 이렇게 크게 한턱 쏘신다.
이제 그 아까웠던 5월을 풍선처럼 저 하늘로 날려 보냈다. 뜨거운 땡볕이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날이 저문다. 석양은 오고 해가 그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해도 질 때는 져야 해로구나라는 다읫의 묵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새벽과 저녁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저녁이 되었으나 낮 바람은 그대로다. 여전히 뜨겁다. 하나님이 바람을 만진다. 해를 지평선 아래로 보내고 남은 여분의 햇빛이 달에게 자리를 완전히 양보할 때까지 사람들은 공원 그늘로 모여 붉게 타던 도시의 저녁을 즐긴다. 더위를 이기고 더위를 즐기는 그들만의 방법이다. 더위를 이기려면 더위 속에 있어야 이긴다. 호수 위를 내리 쬐던 태양의 열기도 호수의 물들을 모두 마르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인생에도 많은 그늘이 드리운다. 영혼의 상처들이 인생을 그늘지게 한다. 이 그늘을 어떻게 이길까? 그 그늘은 지글 지글 끓는 솥처럼 불덩이 같은 더위와도 같다. 몸에 모든 수분이 다 빠져 나가는 듯한 폭염의 맛을 본 사람들은 안다. 들숨, 날숨, 한숨에 뜨거움이 허파를 태우던 그 호흡을 마셔본 사람들은 안다. 여름에는 그늘이 최고다. 그러니 인생의 그늘들을 여름이라고 우겨본다.
오히려 여기 국경 북쪽의 더위는 따갑다. 다리 건너 멕시코다. 사연 많은 안살두아스와 파르, 마타모로스에 있는 국제 다리를 통과하자마자 저 강건너의 더위는 다른 나라의 더위라 그럴까 훨씬 더 따갑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일상일 뿐이다. 더위를 피할 길이 많지 않아서 적응해 버렸나보다. 국경의 다리는 더 많이 건설될 필요가 있다. 그늘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그늘을 즐기면서 그 때 광야의 구름기둥아래서 은혜를 누리던 사람들의 기쁨이 여기 국경에서 복구될지 그 누가 알수 있을까? 구름기둥을 사람들은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었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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