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난 사람을 볼 때, 뜻밖에 횡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고 말을 한다.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한 번쯤 인생 대박을 꿈꾸어 보았던 우리도 나라를 구할 꿈이라도 꾸어 봤었으면 어땠을까? 세상이 너무 쎄졌다. 쎈 언니도 있고 쎈 오빠들도 있다. 쎈것 보다 이민의 치열한 현장에서 생존과 풍요를 넘어선 어떤 뜻있는 일을 했어야 했다.
모르드개는 유대인 노예였다. ‘노예였다’가 중요한 말이 아니라 ‘노예였는데 그래서 어쩌라고’가 더 중요하다. 노예가 된 것이 모르드개 만의 잘못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와 역사의 패권전쟁 그리고 살아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의 현실들을 지나면서 때로는 나와 관계없이 어느날 눈을 떠보니 노예가 되어있었다. 모르드개라는 이름은 노예의 이름이다.
모르드개는 노예였다가 아니라 노예가 된 것이다. 노예 그 자체도 인생 막장인데 거기다가 부모를 잃은 고아였던 에스더 같은 여인은 또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굳이 말하자면 노예의 딸이다. 노예와 노예의 딸이 무슨 힘이 있었을까?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더군다나 유대민족이면 다른 인종들에게 눈엣 가시같은 종족들이라 유대인이라고 말하면 그 순간부터 이유없는 불이익이 돌아오는데 그들이 살아갈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 노예들이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우리는 에스더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가지를 남긴다. 어느 정해진 날에 모든 유대민족이 전부 진멸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진멸되지 않았고 오히려 예루살렘으로 포로에서 돌아오기까지 평안한 날들을 보냈었다는 스토리다.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 이었다.
이 노예들은 하나님의 노예들이었지 페르시아 제국의 노예가 아니었다. 이 의식을 잃었을 때는 그들은 애굽의 노예였던 조상들처럼 먹고 자고 살다가 세월 다 보냈을 것은 불보듯 뻔하다. 교회에 나가서 성령의 그 말씀을 구하는 일이 믿음의 본분이라는 말이다. 모르드개는 위기를 만났을 때 살길을 구걸하지 않았다. 그 입에서 한마디를 내 놓았다. ‘나는 유대인이다’ ‘ 너는 누구냐? 이 엄청난 질문은 온 유대인을 결집시켰다. 하나님도 전율을 느꼈을 것같다. 모르드개는 민족사랑에 목이 열개라도 내놓았다. 인생은 살면서 내가 누구인가를 확실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나는 하나님의 노예이기 때문에 제국에 무릎을 꿇을 수 없다는 말이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한 통찰을 준다. 이것이 살아있는 노예정신이다. 자의든 타의든 어떻게 노예가 되었던지 간에 그것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나는 유대인이다. 나는 하나님의 노예다. 나아가 나는 하나님의 종이다. 이 한마디는 나에게 하나님 이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 그런 뜻이다.
모르드개는 나라를 구했다.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던 자들은 모두 나무에 매달려 처형 되었다. 노예로서 제국을 둘러 엎을수 있는 힘이 바로 제1계명 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사람에게도 무릎을 꿇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생 그렇게 살아보아야 나라를 구하기는 커녕 사람구실도 못하게 된다. 유대민족은 평안하게 살다가 포로 70년이 되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제1계명이다. 하나님이나 제1계명이나 같다. 이렇게 이해하면 가장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잘한 것이다. 요한이 하나님은 말씀 이라고 말한 맥락도 이와 같았다. 예수도 제1계명을 이렇게 말했다. 마음과 뜻과 목숨과 정성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는 명쾌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그 누구도 하나님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아래서 인간은 모두가 똑같다는 말이다. 그것이 자유이며 평등이다. 제1계명이 없다면 모든 인생은 그 누구도 노예를 피할 길이 없다.
하나님께만 노예가 되면 된다. 하나님의 노예됨을 피하는 순간 인간은 저절로 사람의 노예가 된다. 그리고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 노예를 두고 살고 싶어하고 노예들의 문화에서 탈출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인생살이 라면 어쩌자는 말인가? 생존과 풍요의 인생의 목표에 도달했다하자. 그 중심에 스스로가 노예에서 빠져 나왔다는 자신감 때문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런 세계를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 다른 사람들을 자신들의 노예로 보는 시각은 없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패한 인생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왕은 그래서 최고급 노예다. 왕에게 권력은 있을지 몰라도 자유는 없다. 하나님 말고는 모든 인간은 모두 똑같다. 이 개념이 모든 근현대 시대에 국가재건의 큰 틀이 되었었다. 만인은 평등하다고 했다. 처음부터 성경은 이것을 말했다. 그것이 제1계명의 의도였음을 잊지 말기 바란다. 이것을 또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으니 이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열어서 읽어보면 하나님의 논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 성령의 소리가 말씀과 함께 들려 올 수 있다.
3개월쯤 지났다. 페르시아가 안정을 찾는다. 모르드개가 총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실상은 왕은 얼굴마담으로 있을 뿐이었다. 하나님 말고는 그 누구도 왕이어서는 안된다. 왕이 되는 순간 그때 원수 마귀가 달려든다. 그리고 해답 없는 인생의 수렁에 빠져들게 된다. 이것은 예외가 없다. 그것이 악령의 문제든 정신적인 문제든 인생의 문제든 해답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하나님의 노예가 하나님을 노예로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요셉도 총리였다. 요셉도 노예였다. 사람의 노예로 팔려갔어도 하나님의 노예였다. 왜 어린 나이에 큰 유혹을 이겼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마음을 지켰다. 하나님의 노예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요셉이 자기 좋을 대로 살았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노릇하게 된 꼴이 된다. 이후에 그 누구도 요셉을 두렵게 할 수 없었다.
다니엘도 총리였다. 다니엘도 하나님의 노예로 살기로 결단을 한다. 다니엘은 어떤 왕에게도 어떤 사람에게도 머리를 숙이는 법이 없다. 다니엘 시대에 제1계명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다. 아예 풀무불에 던져 넣어졌어도 죽음이 없었다. 그가 총리가 되었다. 국고가 차고 넘쳤다. 부정부패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만 살기로 하는 훈련이다.
총리 모르드개는 나라를 구했고 이후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의 인류구원의 그림자가 되었었다. 제1계명을 가진 사람이 가장 힘이 쎈 사람이다. 성경의 총리들은 사실상 왕이었고 실권자들이었다. 결국 하나님의 노예들이 천하를 재패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은 이것을 기록했으며 총리들은 모두 제1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가 제1계명이었다. 이것이 대박이다. 예수는 나를 믿으라 하지 않았고 나를 가지라고 했다! 그것은 제1계명을 가지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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