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문도 있고 독립선언문도 있듯이 성경에는 ‘바벨론 선언문’이라는 것이 있다. 조금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이것은 모세의 십계명도 아니고 주 예수의 산상설교도 아니다. 이 선언은 문자 그대로 바벨론에서 선언한 것이다.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은 거의 가망이 없을 때 나온 보도였다. 이스라엘에게 전혀 다른 시대를 열겠다는 성경만의 선언이었다. 그 선언은 예루살렘성전에서가 아니라 바벨론 포로의 땅에서 선포될 선언이었다. 일찍이 하나님은 성전보다 먼저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야곱에게 나타났었다. 아담이 망한 이후에 그들이 처음의 성전이었다. 그래서 성전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을 말한다.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한 땅으로 가라!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 곳이 성전이다. 아브라함이 그 음성을 들었음으로 아브라함이 성전이 된다. 야곱의 벧엘에서의 꿈 역시도 그렇다, 야곱은 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두려웠다.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지키겠다. 그래서 예수는 늘 가르쳤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하나의 패키지로 가르쳤다. 신앙은 음성들음이다.
음성의 완성은 오래걸린다. 야곱이 광야를 지나 외삼촌 집으로 망명 길을 갈 때 하나님을 만났다. 그러나 그 꿈은 20년이 지난 이후에 완성되었고 결국 이스라엘이 시작되게 했다. 고생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과정은 더욱더 감동적이었다. 언제든지 결과 보다 하나님의 나라는 과정이 아름답다. 그 과정은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다.
바벨론 선언문이 이스라엘을 다시 재생 시킨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한번도 버린적이 없으시다. 하나님과 광야의 밀회를 나누던 시간은 이스라엘만이 보았고 알았고 경험했었다. 이 놀라운 일들을 다음 세대들은 전해들으면서 믿음으로 수용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보다는 현실과 세상에 흡수되어 갔고 심지어는 성경을 사람의 책으로 변질시켜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들의 꿈과 세상정복의 계획들을 대치시켜 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유로 수도원의 성자들과 하나님의 비밀을 가지고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았던 칠천명들을 제외하고는 믿음을 발견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을 심판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의 침묵은 기다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때가 되었다. 하나님은 바벨론 땅에서는 더이상 침묵하지 않았다. 이것이 평안의 시작이다. 이 놀라운 일을 바벨론 그 포로의 땅에서 다시 시작하신 하나님은 영화로우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다. 그 말씀이 믿음을 시작되게 한다. 그 음성은 하나님의 모든 것이다. 주 음성외에는 더 기쁨없도다라는 찬송도 있다. 이 음성이 성령과 함께 살게 한다.
성령받으라고 그 말씀을 성경에 담아 놓았다. 성경을 통해 주의 말씀을 듣는다. 오늘날에도 그 음성을 듣는 방법이 예배와 선교의 현장에 있다. 이것이 가장 확실하다. 그 말씀은 소리가 아니고 말씀이다. 소리는 율법이었다. 모세에게 말했던 율법이었다. 너무도 엄청나서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적어도 그분의 음성은 엘리야 시대에 분기점을 만든다. 이것은 엘리야의 진짜 힘이었다. 세미한 음성은 그것을 의미했다. 하나님의 소리가 성령의 음성으로 바뀐다는 것을 예고한 순간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소리는 문자 그대로 들리는 말을 말한다. 그러나 말씀은 그 문자의 뜻이 듣는 이들에게 이해되고 깨달아지는 말인 것이다. 엘리야는 제자에게 망토를 던진후 병거타고 하늘로 승천하고 만다.
대오각성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할 때 완성이 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귀에 들리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하면서 순간 순간 지나간다. 언제 지나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살고자하면 항상 깨어있으라고 했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이다. 아니면 사람은 그 음성들을 수시로 폐하거나 거절하면서 살게 된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되, 그 예언을 폐하지 말라고 했다. 만일 음성을 폐할만큼 더 큰일이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속삭임이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성경은 언제든지 예고라는 과정을 거쳐서 일이 행해진다. 바벨론과 페르시아에 이스라엘의 대표 선수들이 거기에 모두 모여 있었다. 애굽도 아니고 광야도 아니고 이제는 가나안도 아니다. 당시의 모든 땅을 신앙화할 야훼 하나님의 의도가 다 들추어 지는 지역이 바벨론이다. 바벨론은 바벨탑에서 왔다. 모든 인간의 르네상스가 다 있던곳이다. 애굽의 수학과 과학이 있었다면 이곳은 오늘날의 우주라는 말이 생기게된 근거를 마련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모든 지식과 지혜와 문명이 집중되어 있었다. 창세기는 거기서 쓰여졌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답답한 이스라엘에게 우물안 개구리처럼 모세! 모세!라고 하면서 살았던 이들에게는 사방팔방으로 열리고 세상을 신앙화할 수 있는 위대한 기회가 된 것을 알았을 리가 없다. 이사야와 다니엘 정도는 알았았을 것 같다. 70년동안 바벨론에서 머물기만 하면 그 이후에 대대손손 영원히 모든 것이 새롭게 되고 모든 것이 회복되기까지 한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거기서의 평화를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나 포로가 아니라 평안이라고 말한 이유다.. 그 평화가 어찌 사람의 평화였겠나.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사랑 그것이었다.
그때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무도 기대할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버린 원망과 불평의 아이콘의 우물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나님도 지쳤다고 생각했다. 하나님도 자신들을 포기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거짓말쟁이들은 그 논리를 가지고 신앙을 무너뜨려가지 시작했다. 사람의 생각에 따라 하나님을 조작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 존재들은 존재한다.
포로였기 때문이다. 되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겠다. 바벨론 선언문 이전에는 모두 귀먹어리였다. 이사야가 말했다. 모두가 소경되게 하라.
그러나 바벨론 선언문이 나온다. 에스겔, 예레미야, 다니엘은 하나님의 거부할 수 없는 그 음성들 가졌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전이다. 성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는 다 안다. 그들은 포로의 땅 이방 땅에 있었다. 이제 사람성전들에서 예언이 나온다. 그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메시지가 흘러 나온다. 그들은 계속 말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된다. 내가 이 일을 위해서 내 영과 새 영을 준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지막 플랜이었고 예언이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대하 드라마가 종영된다.
바벨론 선언문은 결국에 주 예수의 십자가의 문을 통과한다. 선언문이 말씀이기에 거룩하지 못한 것과는 섞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그 더러움을 모두 치워낸다. 그리고 거룩과 거룩이 만난다. 그것을 성경은 결혼에 비유했다. 천국문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축복이 열린다. 그것이 좁은 문이다. 좁은 문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것은 축복으로 변한다. 이 길을 찾아 오라고 40일의 기도시간이 정해졌었다. 예수는 40일이후에 천국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메시지다. 십자가 너머에 성령을 받으라! 하나님의 원래부터의 계획이었다. 이 기간 동안에도 그리고 이 기간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과 내가 한가족이 되는 방법은 성령받는 길 뿐이다. 사순절의 오랜 기도의 시간들이 이 과정속에 있으면 좋겠다. 이것이 사순절의 꿈이고 비로소 성경아래서 하나님과 백성이 하나되는 바벨론 선언이 완성되는 날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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