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들 이라는 다큐멘터리가 4월 19일 히달고 카운티 펌프하우스에서 상영되었다. 세상이 버린 곳이 있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몰래 넘어 들어온 불법 이민자들이 Falfurrias 체크포인트 앞에서 검문을 피해 도망자가 된다. 이곳은 국경에서 2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을 통과하기만 한다면 미국에서도 살 수 있다.
그러나 검문소를 통과하기가 불가능하다. 밤에 추위와 공포, 그리고 낮에 사막의 그 뜨거움 속에서 수천 에이커 땅의 카운티를 걸어서 돌고 돌아 검문소를 통과하고 싶은 것이다. 휴스턴과 샌안토니오와 미국 어딘가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이기도 하고 살길을 찾기위해서 수일간의 밤낮을 걷다가 연락이 끊어지고 마실 물이 없어 탈진하고 실종자가 되고 만다.
South Texas Human Right Centers가 나서서 가족들의 신고를 받고 시체들을 찾아 나섰다. 이미 뼈가 되어 있고 새들의 밥이 되었고 묻혀있는 시신들을 DNA 검사 등을 통해 인적사항을 보관하고 있기도 한다. 약 2천구 가량된다고 했다.
성경은 뼈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모른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가 선지지의 말로 인하여 생명군대로 살아났었다. 엘리사의 죽은 뼈에 닿기만 했어도 시체가 회생했다고도 했다. 모세도 요셉도 야곱도 뼈를 고국으로 옮겨달라고 말했었다. 뼈는 그사람 자신이었다. 하와는 뼈들 중에 최고의 뼈 였다. 이것이 뼈를 찾아 보관하는 이유가 되었으면 했다.
죽음 전에 복음을 만나게 하는 일, 십자가의 강도라도 주 예수께 영혼을 맡겼다는 것, 정말 그 드 넒은 사막에 수 백만장의 전도지를 삐라뿌리듯이 뿌려놓기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물 한방울이라도 찾아해메는 그 도망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이것은 죽어도 살게 하는 인권을 넘어선 복음의 일이 될 수 있다.
친구와 함께 넘어오다가 서로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한 사람은 시체로 발견되었고 한 사람은 탈출에 성공한 경우도 있다. 성경은 말한다. 그날에는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날이 생명이 없는 안식일이 아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두 친구들에게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단 한말씀만 있어도 영원히 사는 길이 열린다.
인권의 사각지대를 폭로하는 인권센터는 정치적이지 않았다. 인간의 양심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인권에 대한 헌신과 순수한 애정이다. 버려진 뼈와 살이 생명에 연결되면 살아난다는 것! 믿음이 먼저다. 세상은 어떻게 어떤 환경의 변화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성경은 복음을 전하라고 했다. 죽은 뼈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교회의 관심들도 뒤따라야 할 것 같다.
지금도 Brooks County 어딘가에 떠돌고 있는 도피자들을 위해서 인권센터는 물병들을 곳곳에 준비해 둔다. Water Station들이다. 국경 넘어 어딘가에서 이미 죽어있고 오늘도 죽어가는 사람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이다. 도피처를 군데 군데 마련해 놓기도 했다. 생명의 말씀을 만나는 것이 도피처가 된다. 그 일을 하자는 것이다. 살길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살길을 찾아 주는 일이 인권과 복음이 만나는 길이다.
No more deaths! 죽음을 막아서자는 것! 이것이 법을 넘어, 인간성을 넘어, 불법화된 세상의 구조적 죄악을 넘어 가자는 센터의 인권운동이라야 할 것이다. 실종된 사람들에게도 죽은 자들도 모두 하나님의 존엄한 피조물이다. 인권뿐만아니라 누구의 생명이든 모두 같다. 살아야 한다. 그래서 센터는 유해를 찾고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루도록 기회를 만들고 고인들에게도 최대의 존중을 표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전쟁은 무효다. 그래서 오늘날의 모든 죽음은 불법이다. 신약성경 어디에 주 예수가 허락한 전쟁이 있었고 죽음이 있었는가! 가인이 아우 아벨을 살인했다. 그러나 죽은 아벨 대신 셋을 주었고 가인에게 살길을 열어준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칠배의 벌을 받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 듣지 못해 죽어가고 있을 뿐이다. 가인의 부모인 아담과 하와는 소위 원죄를 지었다. 그러나 무화과 잎으로 그들을 가려주고 살 길을 열어 주었고 노동을 통해 땀흘리며 먹고살게 해 놓았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에 초점이 있지 않고 생명에 집중한다. 죽음이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죽은자는 죽은자들에게 맡기고 산자는 나를 따르라고 주 예수는 말했다. 심지어 부지불식간에 사람을 죽였을때 도피성 제도를 두어 살인을 막았었다. 게다가 주 예수는 모든 죄인들의 죽음을 대신해서 자신이 죽음을 당함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율법을 완성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죽음이 없음을 말했고 죽어도 산다는 말을 했을때는 세상에는 생명이 절대적이고 생명을 택하고 생명을 전하는 일이 모든 인권과 복음의 본질이 된다고 말하신 것이다.
고통이 심해지면 때로는 주 하나님이 천국으로 먼저 데려가신다. 그것이 안락사다. 먼저 되고 나중되고 안식으로 가기도 하고 하나님의 비밀은 우리가 알 수가 없다. 주 예수의 부활도 그와 같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죽음이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는 죽음이 없다. 부활은 죽음 없음을 다시 선언했던 사건이었다. 성령은 이 사건을 영원히 게런티했다. 악령이 죽음을 지금도 이용한다. 그러나 성령을 이길 수는 없다. 십자가에서 확인된 바다.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도망자가 되어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게 영혼의 장례를 치루는 방법은 주 예수의 복음을 만나게 길을 만드는 일이다.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복음이 전파된다는 말은 죽음을 몰아낸다는 말과도 같다.
복음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만하면 누구든지 몸은 죽으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영혼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영원히 죽지 않는다. 생명은 영혼에 있기 때문이다. 영혼은 생명의 집이다. 생명이 없으면 영혼이 텅텅비어있게 된다. 뜬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을 본다. 영혼에 생명이 접근되지 못한 채 인권만을 말하는 일은 절반의 노력으로 끝날 수 있다. 주 예수는 이것을 말하면서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다.
실종된 인권, 실종된 믿음 그리고 실종된 이 땅을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일은 현장의 인권 전문인들과 교회의 복음이 함께 갈때 길을 잃은 친구들의 인권과 생명을 함께 지켜 갈 수가 있다. 세상은 인권이 필요하고 인권은 생명이 필요하다.
교회는 주 예수의 많은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두의 것이다. 이 복음은 인권과 생명경시에 대한 사각지대를 찾아낸다. 도망자의 그 운명이 생명의 삐라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집어들도록 그리고 스스로가 기도를 올리도록 그리고 주 예수여 영혼을 받아달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이것이 주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이유 중에 하나다. 사각지대는 감추어져 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아내는 눈을 뜬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눈이 빛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인권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실력을 발휘하는 나라가 가장 복되고 힘있고 살만한 나라이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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