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참 빛 - 1950년의 성탄절 1 7. 독자 기고 문태화 목사 2](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5/12/7.-독자-기고-문태화-목사-2-1024x704.jpg)
1950년, 그해 성탄절은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다. 그해 10월, 유엔군이 평양 북쪽의 박천을 점령하며 해방이 찾아왔고, 마룻바닥 아래 숨었던 나와 가족들은 오랜 은신처에서 나왔다.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여 하나님의 자비와 보호하심에 감사하며 찬양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안주의 옛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일주일 만에 중국 공산군이 대거 참전하면서 유엔군은 우리가 있는 북쪽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유엔군의 명령에 따라 모든 민간인들은 남쪽으로 가능한한 빠르게 피난해야 했다.
이것이 나의 피난 여정의 시작이었다. 나는 쌀 한 자루만 달랑 메고, 유엔 차량의 헤드라이트를 “등불(pillar of fire)” 삼아 사흘 밤낮을 걸었다. 길 위에서 수없이 많은 시신을 보았다. 어떤 이는 아직 불에 타고 있었고, 어떤 이는 팔다리가 없었으며, 어떤 이는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는 시체였다. 그것은 지옥과도 같은 길이었다. 가까스로 평양에 도착해 피로에 지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안도할 수 없었다. 확성기 에서는 “공산군이 이미 평양에 진입했다. 대동강 다리를 곧 폭파하겠다.”라고 쉴 새 없이 기계음을 쏟아내었고, 나와 아버지, 어린 남동생은 지친 몸을 일으켜 곧바로 남쪽을 향해 떠나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피난길에 올랐고, 불과 몇 시간 후 자정이 되어 울려퍼진 큰 폭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대동강 다리가 폭파되었고, 평양은 불바다가 되어 새빨간 불꽃만이 남아있었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조심히 그러나 서두르며 계속 걸었다. 수차례 적에게 포위되었지만, 한 정찰병의 도움으로 우회하면서 다행히 서해상의 작은 항구도시 해주라는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미 버려진 도시, 주민들이 떠나 폐허가 되어버린 해주에는 나를 비롯한 수백 명의 탈북민들이 피난와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로였던 아버지는 그런 상황에서도 몇 분의 기독교인들에게 성탄 예배를 드리자고 제안하셨고, 약 25명의 피난민이 텅 비어있는 낡고 썰렁한 예배당에 모였다. 모두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두 달 가까이 이어진 허기와 피난생활에 지쳐 있었으며, 얼굴에는 두려움과 근심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성탄 예배를 준비했다. 아버지는 예배당의 낡은 강단과 의자들을 손수건으로 닦고, 서랍을 뒤져 쓰다 남은 초 세 개를 찾아내어 강단 위에 놓고 불을 켜 성탄 예배 환경을 조성했다. 우리는 촛불 아래에서 성탄 찬송을 부르고, 자주 듣던 성탄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흩어진 가족들의 안전과 미래를 위해 기도했다. 이 성탄은 내가 북쪽에서 알던 흰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었다. 그 자리에 임재하신 아기 예수 외에는 아무런 선물도 없고, 먹을 것도 충분치 않았다. 전쟁의 어둠 속에서,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가운데서도, 그 촛불은 희망의 빛이었고, 절망과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찬양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가운데 평화!”그러나 예배 도중, 거리에서 누군가 급히 소리쳤다. “적이 오고있다. 북쪽 마을에서 적이 오고있다. 어서 도망쳐라!” 우리는 또 다시 날이 새도록 숨죽이며 남쪽으로 이동해야만 했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동이 틀 무렵, 가장 어두운 순간 저 멀리 캄캄한 바다 위에서 희미한 불빛 하나를 발견했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렇게 한 어부의 집에 닿았다.
아버지는 어부에게 우리가 머물수 있도록 간청했고, 다음날, 마침내 한 척의 작은 배가 바닷가 근처로 왔을 때, 우리는 망설임 없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우리는 공산주의와 전쟁으로부터 자유를 향하여 떠나는 마지막 배를 타고 인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둡고 길었던 1950년의 성탄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텅 빈 예배당에서 피난민들과 밝힌 그 성탄 촛불, 어두운 바닷가에 희미하게 밝혀있던 한 어부의 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피난 여정에 참 빛이 되었다. 그렇게 성탄은 파괴와 죽음이 난무한 어둠에 평화와 화해, 그리고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 어느덧 75년이 지난 오늘, 2025년의 성탄이 온 인류에게, 특히 어둠 속에서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참 빛으로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알림] 문 목사님의 생생한 ‘1950년 전쟁 중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은 독자라면, 오는 24일 오후 7시 30분에 드려지는 휴스턴 제일연합감리교회 성탄감사예배에 참석해 보는 것도 뜻깊은 경험이 될 것으로 기대 된다. (문의: 휴스턴 제일연합감리교회 노주환 담임목사 fkumc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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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화(Mark T. Moon) 목사
1929년 평남 안주 출생
숭실대 졸업 후 도미
종교학, 목회학 석사
장로교와 감리교에서 30년간 사역
은퇴 후 30년간 작은교회, 주일학교 사역
2024년 아내의 치료를 위해 휴스턴에 정착
현재 휴스턴 제일연합감리교회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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