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계절이다.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기다린다. 가는 세월을 누가 막겠는가? 며칠전에 92세의 김동길 교수님의 Youtube 방송을 들었는데 참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했다. 어려서는 그렇게 시간이 안가서 지겨웠는데 나이 60이 되니까 61세 62세 63세로 가는게 아니라, 60세 70세 80세로 순식간에 지나가더라고 했다. 그런 인생의 허무함을 절실히 느끼는 우리에게 만일 기다림이 없다면 삶은 소망이 끊기고 말 것이다. 소망은 기다리게 하는 힘이다. 기다림은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옛신앙인들은 구원자를 간절히 기다리며 삶의 고통과 아픔을 이겼다. 세상이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래서 메시아께서는 이 세상에 아기 예수로 탄생하셨다. 그 날을 성탄절이라고 한다. 성탄절이 가까이 다가왔다. 남편은 고생하는 아내에게 뭔가 깜짝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쁨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이따 카톡으로 퀴즈 하나를 보낼 테니 알아 맞히면 선물을 주겠다고 했다. 아내는 궁금해서 오전 내내 남편으로부터 카톡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점심시간이 되자 약속대로 남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여보, 이 세상에는 세 가지의 귀중한 “금”이 있는데 그게 뭔지 알아 맞춰 봐!”
잠시 후 아내로부터 답이 왔다.
“현금, 지금, 입금” 얼마 후 남편이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방금, 쬐금, 입금”. 방금, 쬐금, 작은 돈을 입금해도 기쁜데 예수님은 온 세상과 온 인류역사에서 가장 기쁜 선물이 아닐까?
“너희는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참된 선물은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일수록 더욱 귀하고 가치 있다. 그래서 간절한 기다림일수록 더욱 귀하고 가치 있는 선물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꿀 있는 선물, 우리의 고통을 소멸하시고, 우리가 받을 심판을 면하게 하시며, 우리의 죽음까지도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줄 수 있는 선물이다.
이스라엘의 아하스 왕 때에 나라가 풍전등화였다. 그래서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했더니 응답이 왔다. 아하스 왕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선지자는 아하스 왕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는 증거로 구원의 징조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전했다. “징조”는 예언의 성취와 약속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증거이다. 그것은 아하스에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하스 왕은 선지자의 말을 우습게 여겼다. 아하스 왕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12)
여호와를 시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아하스 왕은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징조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시험에 보라고 하실 때 시험해 보는 것은 결코 죄가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든지 하라고 하시면 해야 한다. 그것이 전능자 앞에서의 겸손이다.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것은 결코 우리에게 손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주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토 달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왜 그래야 할까? 하나님은 선하시므로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다 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므로 하나님이 하신 것은 언제나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은 언제나 복된 것이므로 주신대로 받는 것이 축복이다. 말하자면 아하스 왕은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으려는 것이다. 그랬더니 하나님의 사람이 아하스에게 뭐라고 하셨는가?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사7:13)
아하스 왕에게 하신 책망이다. 무슨 말인가? 아하스 왕은 자신의 의를 가지고, 자신의 지혜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계획대로 나라를 다스렸지만, 결국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을 받으면 누가 가장 괴로움을 당할까? 두 말할 것도 없이 백성들이다. 이제 꼼짝 없이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이 국민들을 괴롭게 하는 아니겠는가? 경제가 무너지고 안보가 무너지고 국인들을 싸울 전의조차 없어졌다. 백성들을 고통 가운데로 이끌어 가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없고, 잘못했다는 미안한 마음조차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라를 구해 주시겠다고, 약속의 징표를 구하라고, 구원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절하므로 하나님을 괴롭히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마저 거절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도적으로 징조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아하스 왕의 교만과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이시고 구원의 언약을 베풀어 주시려고 한다. 그대로 두면 망할 수밖에 없어서 그대로 보고만 계실 수 없었다. 택한 백성들에게 하신 언약을 버리지 않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징표는 무엇인가?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사7:14/마1:23)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주신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다. 우리는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의 믿음이 부족할지라도 주도적으로 “친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한다.
어려서 종종 뒷산에 올라가서 산 돌을 주워 오곤 하였다. 그릇에 담아 물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가 “쌀뜨물을 주면 더 빨리 자란다”고 하길래, 어머니에게 쌀뜨물을 얻어 부어 주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얼마나 컸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무슨 돌이 쌀뜨물을 준다고 자라겠는가? 배고픈 조상들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런 기다림의 소망을 일부러 만들어서라도 현실을 이겨 나가려 했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날이 조금 고달프더라도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실 임마누엘 하나님을 기다리며 견디고 여겨 보자. 우리 중에 누가 의로운 사람이 있겠는가? 다 치우쳐 내 고집대로 살아가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신 내 뜻대로 살려고 한다. 그리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셨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신다. 장래에도 함께 하실 것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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