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회 노인대학에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누가 천국에 갑니까?” 그러자 여러분들이 대답을 합니다. “봉사 많이 한 사람이요.” “헌신을 많이 한 사람이요.”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이요.” “열심히 있는 사람이요.” 그러자 한 노인이 대답을 합니다. “죽어야 가지요.”
정답입니다. 죽어야 갑니다. 믿음은 죽음이 먼저입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죽으면 부활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예루살렘에 간다고 하자 베드로는 그 길을 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기억하십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죽어야 죄사함이 있고, 죽어야 죄 용서가 있고, 죽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가로 막는 것은 사단의 길이지 하나님이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으시는 갈보리 언덕에 사도 요한 외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왜 죽음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죽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안하라.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 뿐 만 아니라 우리도 걱정 근심이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평강이있기를 축복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주후 3세기 중반 로마황제 발레리안이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일 때, 그 일을 수행했던 군인 중 하나가 히폴리투스였습니다. 로렌스를 고문하고 처형하는 일을 했는데 그를 고문하다가 놀랐습니다. 고문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소리를 질러 대다가도 마지막은 항상 평안하게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몸이 뒤틀리고 살이 찢겨 나갈 때는 영락없이 다른 이들과 같다가도, 고통의 순간이 지나면 금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오는 것입니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고문하는 자신이 오히려 마음이 불편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날은 고문 받는 로렌스와 함께 하시는 예수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 후 히폴리투스도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히폴리투스 역시 황제의 선고를 받아 사지가 발에 묶인 채로 찢겨 순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의 비밀은 평안 자체이신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평강을 잃고, 좌절하며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나약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께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절) 예수께서 온갖 모욕과 저주를 받으면서도 누리셨던 평강, 배신 속에서도 누리셨던 그 평강, 외로움 가운데서도 누리셨던 그 평강 자체를 주시는 것입니다.
2.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절)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원한 부활을 기다릴 수 있는 믿음 안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 없는 기쁨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기뻐하다’는 말은 ‘두려워하다’의 반대되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변화의 원인은 문 밖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변화는 문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두려움이 기쁨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3.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2절)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성령을 받으면 힘이 있고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18세기 덴마크는 영국과 독일과의 두 차례의 전쟁으로 척박하고 협소한 농토, 나무 한그루 자라지 못하는 광활한 황무지만 남겨졌습니다. 희망을 잃은 국민들은 퇴폐적인 향락과 도박, 싸움질을 일삼고, 정신적으로 타락하며 병이 들었습니다. 당시 구룬트비(Nikolai Grundtvig)목사는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치렀습니다. ‘덴마크 교회 지도자들이여 회개하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는데 시험관들이 건방지다는 이유로 작은 섬으로 발령을 내었습니다. 구룬트비는 교회를 개혁하고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지만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잠을 못자고 헛소리까지 하며 폐인 직전까지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구룬투비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기도하는 그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자복하며 눈물로 부르짖을 때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천국의 존재를 확신하면서 이 땅이 아닌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신경쇠약과 불면증을 이기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바뀐 구룬트비를 통해 덴마크에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나라사랑”을 국민들에게 외쳤습니다. 청년들이 변하였습니다. 사회가 변하였습니다. 그 결과 덴마크는 선진국으로 올라 설 수 있었습니다. 덴마크 국민들은 구룬트비 목사를 국부로 생각하여 곳곳에 그룬트비의 동상을 세웠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살리는 역사가 있습니다. 국가도 살리고 개인도 살립니다. 부활의 주께서 주시는 성령을 받아 우리도 살아나야 합니다. ‘받으라’는 ‘영접하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어떤 능력을 받거나 도구적 수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인격으로서의 성령을 실존 속에 모신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말미암아 두려움에 떨며 문을 잠그고 낙심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생명의 영 즉 살리는 영입니다. 성령을 받으라는 말은 생명의 영에 사로잡히라는 뜻입니다. 두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심은 성령만이 고난과 핍박 가운데 살아가는 그들 속에 내재하여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던 리빙스톤이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일입니다. 그레스코 대학이 수여하는 명예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나타난 리빙스턴은 몹시 쇠약해 보였습니다. 심한 열병으로 20번이나 쓰러졌었습니다. 리빙스톤이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간다고 말하자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고생과 죽음의 땅 아프리카로 리빙스턴이 돌아가리라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리빙스톤의 연설은 이렇게 맺어졌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신 살아계신 주님이 길 동무 되어주시어 원시림과 광야를 함께 걸어가 주실 것입니다.” 리빙스톤이 극심한 고생을 선택하고 죽음의 땅 아프리카로 돌아가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부활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고난과 역경, 절망 중에도 끝 날까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문을 닫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혹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부활절의 예수로만 아니라 살아계신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부활절을 계기로 믿음이 한층 더 성장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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