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은 유진 피터슨이 성경 전체를 번역한 뒤 남긴 말, “부활을 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는 부활이 과거의 사건이나 신학적 개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생동감 있게 살아내야 할 현실임을 말해준다.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면 생기를 잃겠지만, 주님의 영광이 마음에 충만할 때 진정한 기쁨과 활력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매일 은혜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길이자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전략이 된다. 예수는 새벽에 부활했다. 새벽은 말씀이 부활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통해서 이 일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무덤의 사망 권세를 빈무덤으로 만들었다. 빈무덤 때문에, 무덤에서 사라진 예수 때문에 예루살렘은 대 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을 집행한 것 뿐이다.
그러나 빈무덤으로 인하여 예수는 다시 은혜와 영광과 성령 충만의 길을 열었고 그 길에 그와 함께 서 있는 사람들과 영원히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무슨 말인가. 세상나라의 끝날이 있다는 것과 영원한 새나라의 시작이 동시에 맞물려 돌아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두 나라는 분리된 다는 것을 가르친 의미로 받아들여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려 빈무덤을 통해 부활하셨다. 그분의 부활은 단지 신비한 사건이 아니라, 은혜와 영광, 성령 충만의 새로운 길을 여는 시작점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는 이 길 위에 서있는 자들과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하나님 앞에서의 인생의 최고 좋은 고백은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없다. 모든 것은 예수안에 있다. 세상의 끝을 예수가 말했을때는 세상의 끝이 반드시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믿는 자는 예수의 길 안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인생의 사는 방식을 찾은 것과 같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길을 만들 수 없고, 죄를 해결할 수도 없고 죄는 마치 현실 속 블랙홀이나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기 때문에 단순히 살아 있는 것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 인간의 존재 목적은 죄를 이기는 데 있으며, 그 죄를 이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의 부활은 죄사함의 완전한 증거이며, 부활로 인해 이제 믿는 자들은 영원히 사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부활을 통해서 모든 일이 이루어 졌다는 의미이다.
부활에는 순서가 있다. 예수의 부활이 처음 부활이라면, 믿는 자들의 몸의 부활은 나중 부활이다. 처음 부활은 ‘말씀의 부활’로서, 예수께서 예언에 따라 부활하셨고 그분 자신도 부활을 미리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기초한다.
부활을 미리 말하고 십자가의 형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 십자가가 부활의 십자가로서 그리고 땅의 십자가가 아닌 하늘의 십자가인것을 말한 것이다. 죄없는 하늘의 십자가는 죄악으로 인하여 세워진 땅의 모든 십자가의 형틀을 모두 없앴다.이것이 죄사함이다. 그리고 이것이 복음전파의 주제이며, 부활의 말씀이 결국은 십자가의 저주를 이긴 것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성부, 성자, 성령은 말씀을 중심으로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인 것을 확증했으며, 성령의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말씀을 통해 생각과 말, 존재와, 행동, 그리고 관계의 변화를 경험하게 했다. 이것이 곧 부활의 과정이다.
예수는 부활의 눈으로 성경을 읽으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런 시각을 주셨다. 아브라함과 다윗, 에스더 같은 구약의 인물들도 부활의 믿음으로 살았고, 성경은 처음부터 부활을 말하기시작했는데 창세기 1장은 부활이 일어나는 방법은 빛이 있으라고 말해서 빛이 창조되는 것과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것이 말씀창조와 말씀부활이었기 때문에 부활의 말씀을 가진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고,부활은 언제나 그렇게 살게 했었다. .
오늘날의 신자들은 각자의 현실 안에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삶의 현장에서 고난을 감수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살아간다. 이는 쉬운 길이 아닐지라도, 몸의 부활이라는 궁극적 소망을 향한 최선의 길인것도 잊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운다고 말했다. 이는 예수께서 고난을 몸소 짊어지심으로 부활이 일어난 원리를 따르는 삶이다. 예수는 공생애 동안 이미 부활에 대해 설교하셨고, 그 말씀을 마음에 담은 사람들은 이미 부활의 삶을 시작하고 있었다.
부활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닌 공동체의 개념을 포함하며, 천국도 개인의 나라라기 보다는 작고 긴밀한 공동체가 함께 이루는 연합된 나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고 바울은 서로가 서로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세워주는 나라가 예수의 교회라고 말을 했었다.한분 그리스도안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늘의 권능을 위임하셨고, 마을마다 다니며 평안을 전하고, 귀신을 쫓고, 죄를 사하며 생명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에 매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권능에 의지해서 사역에 임했다.
예수와 함께 있을때는 제자라고 불렀고 예수께 보냄을 받은 제자들을 사도라고 불렀다. 예수는 12명의 제자들을 두 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둘씩 짝지어 보내셨다. 첫 번째 소그룹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급진적이고 선봉적인 사도들로 구성되었고, 두 번째 소그룹은 도마를 중심으로 한 온유하고 양육 중심적인 사도들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각기 다른 성격과 기질을 가진 사도들이 팀을 이루어 함께 사역했으며, 그 조합은 때로는 극과 극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가룟 유다와 짝을 이뤘던 제자가 누구였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이 함께 사역했을 때에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났음을 성경은 증거한다. 그것은 권능에 의할 때만 그랬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한 사람은 천국의 문지기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지옥의 문지기가 되었다. 이 극단적인 대비는 부활의 길이 단순히 능력과 권능의 문제만은 아니며 그것으로 완성되지 않고 부활의 말씀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예고한 것과 같다. 예수와 제자들. 사도와 교회들 이 모든 관계가 부활 안에서 연결되고 통합되어 나갈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다.
개척적이면서도 안정되고, 단기적인 추진력과 장기적인 전략을 함께 갖춘 제자들이 협력할 때, 오늘날도 부활의 아침은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부활을 살아내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며,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부활을 사는 방식이다.
부활은 말씀의 부활이다. 그리고 현재의 부활이다. 예수는 나는 부활이다라고 말했다. 부활이 미래로 연기 되지 않는다. 교회의 설교는 매주 일어난다. 모든 설교는 부활의 설교이고 모든 성경은 부활을 말하고 있다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예수는 말했다. 나사로야 나오라! 나사로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무덤에서 걸어나왔고 그의 무덤은 빈무덤이 되었다. 부활은 말씀의 부활이다. 들리면 살아난다고 했고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고도 했다. 에스겔 골짜기의 죽은 뼈들은 말씀이 들리자 살아났었다. 부활은 말씀이 들리는 부활이다. 그리고 들리자 마자 일어나는 사건이다.
부활을 미래로 던지는 마르다의 말을 듣고 예수는 슬퍼했다. 예수의 부활약속을 믿지 않았던 가룟유다는 예수를 팔았다. 그리고 사두개 종파의 사람들은 부활은 없다고 그들의 규정집에 법으로 못을 박아 놓았다. 어기는 자들은 출교되었다.
부활에 대한 오해는 지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지 못하거나 깨닫지 못하면 나증 부활, 즉 부활의 완성과 완성된 부활과 예수의 몸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게하고 둘째 사망을 피할 수 없게한다고 성경은 말했다.
결국 부활의 시대는 들리는 말씀의 시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이것이 첫째 부활에 해당한다. 그리고 몸의 부활을 둘째 부활라고 말하는데, 공동체 안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부활의 말씀을 듣고,나가서 부활의 말씀을 사는 것 그것이 부활의 몸, 둘째 부활을 만드는 일이다.
부활은 부활의 말씀과 반드시 연결되고 그 말씀과 동행하고 그 말씀으로 섬기는 것을 부활을 산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은 넓은 의미를 띠면서도 매우 협착하고 좁은 길이며 주님께서 선택하는 영역이며, 그것은 생명과 영생과 사람을 살리는 만남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활과 함께 부활을 사는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부활절 7주간의 절기를 기대한다. 이제 부터 교회는 부활의 말씀의 터위에 세워졌음을 먼저 확신하고 부활의 말씀을 늘 기대하고 교회공동체안으로 들어오고, 나가서 그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부활을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된다.
이근형 목사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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