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전 한인회장, 미국 참전용사 종신회원 인정
아들과 웨슬리 헌트 의원 조력 속 이룬 값진 결실

By 동자강 기자
info@kjhou.com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한국군 출신 미주 한인들이 미국 보훈 당국으로부터 정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가운데, 휴스턴 동포사회의 원로인 이상일 전 한인회장(전 휴스턴 체육회장)이 최근 미국 베트남 참전용사 협회(AVVA)로부터 종신회원(Life Member) 증서를 수여받는 뜻깊은 결실을 맺었다. 이는 미주 한인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인 베트남전 참전용사 보훈법(Korean American VALOR Act·H.R. 366)’의 실질적인 결실이자, 오랜 세월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한인 참전용사의 명예가 온전히 회복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다.
한국군 해군 장교로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나 한국 보훈 기준의 한계로 참전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했던 이상일 전 회장은, 지난 2023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VALOR Act와 휴스턴 지역구 웨슬리 헌트(Wesley Hunt) 연방하원의원, 그리고 미 공군사관학교 출신 아들의 헌신적인 조력에 힘입어 약 1년간의 엄격한 심사 끝에 미국 정부로부터 참전 사실을 공식 인정받았다.
이상일 전 회장을 오랜 세월 지켜봐 온 휴스턴 한인 동포들과 예비역 인사들은 “한국에서는 행정적 기준 탓에 인정받지 못했던 참전의 역사가 미국에서라도 명백히 확인되었다”며 함께 기뻐했다. 지난 2026년 9월 29일 자로 발급된 증서를 수령한 이상을 회장의 소식을 접한 한인동포들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뒤 과거 한국 해군 중위로서 자유 진영을 위해 싸웠던 숭고한 헌신이 미국에서 공인받은 대단히 의미 있는 쾌거”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 보훈 기준과 미국 인정의 차이
이상일 회장은 1964년 대한민국 해군사관학교를 18기로 졸업한 정통 해군 장교 출신이다. 1965년 맹호부대 등 한국군 파병 병력을 실은 대규모 상륙함이 부산항을 떠날 당시, 이상일 회장은 해군 최대 함정이자 기함이었던 경기함(711함)에서 통신관(소위)으로 근무하며 전단 사령관의 핵심 작전 명령을 무전으로 신속히 하달하는 중책을 완수했다. 이후 미국이 새로 도입한 5인치 속사포 전투함의 운용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한국 해군을 대표해 미 제7함대에 파견되었고, 통킹만 일대에서 6개월간 실전 작전을 직접 수행했다. 그러나 한국 보훈 당국은 “지상 전투 현장에서 직접 개인 화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경직된 잣대를 적용해 베트남전 참전유공자 인정을 불허했다. 해군 함정의 병력 호송과 해상 포술 지원 역시 목숨을 건 핵심 참전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기준에 가로막히자, 동포사회와 전우들은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한계를 허문 것이 바로 2023년 11월 발효된 ‘Korean American VALOR Act’였다. 영 김(Young Kim) 하원의원 등이 초당적으로 이끌어낸 이 법안령에 따라 1962년부터 1975년 사이 한국군으로 참전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들에게 미 보훈부(VA)의 문호가 열리며 비로소 명예 회복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아들과 지역 정치인의 빛나는 조력
법안 통과 이후에도 50여 년 전의 군사 기록을 입증하고 실제 보훈 단체의 인정을 이끌어내는 행정 절차는 쉽지 않았다. 이 지난한 과정을 돌파한 일등 공신은 미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21년간 공군 조종사로 복무한 차남 이희주(Jim H. Lee) 예비역 소령이었다. 평생 국가와 가족을 위해 묵묵히 헌신해 온 부친의 명예를 되찾아드리고자, 아들은 1년 가까이 방대한 군 복무 기록과 항해 일지를 발굴하며 130여페이지가 넘는 근거를 찾는데 전력을 쏟았다.
여기에 휴스턴 한인 밀집 지역인 제38선거구(TX-38)를 관할하는 웨슬리 헌트(Wesley Hunt) 연방하원의원의 든든한 지원 사격도 힘을 보탰다. 미 육군사관학교(웨스트포인트) 출신이자 전투 헬기 조종사로 복무한 참전 베테랑인 헌트 의원은 ‘국가를 위해 피 흘린 베테랑은 출신을 불문하고 반드시 최고의 예우를 받아야 한다’는 깊은 공감대 속에서 미 보훈 당국과의 가교 역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미국 사회 공헌하는 명문 사관 가문
이로써 1967년 대한민국 해군 전투함의 포술장으로 활약했던 아버지는 미국 보훈 당국이 공식 인정한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고, 그 아들은 미 공군사관학교 입학사정관(ALO)으로서 한인 차세대 육성에 기여하는 자랑스러운 명문 사관 가문의 위상을 미국 주류 사회에 뚜렷이 각인시켰다. 대를 이어 한미 양국의 자유와 안보를 수호해 온 이들 부자의 궤적은 한인 이민 사회에 손꼽히는 이민역사로 기록 되고 있다.
해사부터 미시간대 석사까지 이민의 삶
이상일 회장은 1964년 해사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치고 1971년 10월 부인과 2살, 9살 두 아들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아 올해로 이민 55년을 맞았다. 미국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학업으로 첫 단추를 끼운 이상일 회장은 피나는 노력으로 그랜드밸리주립대에서 응용수학 학사(1974년)를 취득한 뒤, 미시간 대학교에서 조선공학 석사(1976년)와 기계공학 석사(1977년) 학위를 연이어 취득하며 남다른 학구열을 불태웠다. 1977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이후에는 대형 유조선과 조선 해양 플랜트 분야의 전문 엔지니어로 활약하며 주류 산업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이민 1세대의 거친 파도를 넘으면서도 이상일 회장은 한인사회 봉사에도 헌신했다. 제20대 휴스턴 한인회장과 제4대 체육회장을 역임한 그는 1997년 한인회장 재임 시절 현지 경찰(HPD)에 대대적인 사랑의 담요 기증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지역사회와의 상생에 앞장섰다.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이상일 회장은 “젊은 날 사관학교에 입학해 치열하게 살았던 청년이 어느덧 여든여섯이 되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목표를 향해 정직하게 도전하고 개척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묵직한 삶의 교훈을 후대에 남겼다. 이번 이상일 전 회장의 AVVA 종신회원 자격 획득은 한 개인의 늦깎이 보훈 승리를 넘어, 조국을 위해 청춘을 바치고도 오랜 세월 잊혀졌던 미주 한인 참전용사 모두에게 명예와 긍지를 되찾아준 값진 이정표로 휴스턴 한인사회에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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