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이 답이다” (이민규)
어느 날 한 사람이 저명한 사상가인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자 블레이크가 대답했습니다. “많이 생각하십시오” 대답을 들은 그는 마치 보물이라도 얻은 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움직이지도 않고 천장을 바라보면서 ‘생각’ 만 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자, 그의 부인이 울상을 지으며 블레이크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남편이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온 뒤부터 식사도 거르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제발 제 남편 좀 말려주세요. 그 부인과 함께 블레이크가 집을 방문해보니 남자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블레이크를 보자 그는 가까스로 일어나더니 블레이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저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을 때까지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사상가가 되려면 얼마나 더 생각해야 하나요? 그러자 블레이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가 깜빡 잊고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군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쓰레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행동하지 않는 사상은 쓰레기인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쓰레기와 같은 입니다. 쓰레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이지요. 믿음을 가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행동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아니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행동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보여 지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야고보는 행함으로 입증되는 믿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이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믿음과 행함이 일치된 아브라함과 라합을 예로 들면서 행함으로만 믿음의 진정성이 입증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믿음은 행함으로 입증되고 행함은 믿음 위에서만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있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18절) 행함을 통해 반드시 상대방이 보는 눈앞에서 자기의 믿음을 제시하겠다는 확신에 찬 모습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면서도 행위로 부인하는 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구체적인 행위나 삶으로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행함이 있는 믿음을 어떻게 보여야 합니까?
1.행함 있는 믿음은 유익을 줍니다.
행동으로 그 믿음을 보일 때에 자신에게 유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기에 무익하다는 의미입니다. 죽음 믿음은 생명력이 없기에 어떠한 영향력도 주지 못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반면에 행함이 있는 믿음은 여러 가지 유익을 가져다 줍니다. 자신이 받는 구원의 유익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절)
사마리아사람의 행함 (눅 10:25-37)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모진 매를 맞고 가진 것을 다 빼았겼습니다. 그 때에 그곳을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이 차례로 지나가게 됩니다. 제사장, 레위인은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 줍니다. 약을 발라 주고 데리고 주막으로 가서 치료해 주기를 부탁하고 치료에 들어갈 돈을 지불하고 갑니다. 모자라면 오는 길에 갚겠다고 합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요즘으로 보면 목사, 전도사입니다. 레위인은 누구입니까? 교인입니다. 권사, 집사들입니다. 사마리아인은 누구입니까? 이방인,불신자입니다. 행함 있는 믿음은 자신에게 유익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됩니다.
2.행함있는 믿음은 지금의 믿음보다 더 온전케 해 줍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맺어지는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알듯이 행함을 보면 믿음의 온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하게 되는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온전한 축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치는 행위를 통해 믿음이 온전해졌습니다. 이는 행함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행함이라는 증거로 이전에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더 확실히 했다는 의미입니다. 아들을 바치는 순종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온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온전한 축복을 구하면서 부분적인 순종에 그치고 있지 않습니까? 입만 움직이고 손발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은 순종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온전한 믿음을 통해 온전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라합은 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정탐꾼을 도와줍니다.이런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은 행함과 별개가 아닙니다. 믿음은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됩니다. 믿음과 행함은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아브라함의 행위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행함으로 그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칭해 주셨으며 하나님의 벗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6절) 행함이 있는 믿음을 통하여 복된 삶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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