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만 헌트(Holman Hunt)의 작품 중에 보면 누군가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그린 유명한 그림이 있다.
문밖에 서 계시는 예수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그림이다.
이 그림을 감상하던 한 친구가 헌트에게 말 했다.
“여보게, 문에 손잡이를 그리지 않았네 그려”
그랬더니 헌트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한다.
“나도 안 다네, 손잡이는 문 안에 있어서 밖에서는 열 수가 없지.”
그렇다.
내 마음 문은 내가 열어드리지 않는 한 아무도 내게 들어올 수가 없다.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들에게 마음 문을 열어달라고 호소하신다.
그래서 철학자 헤겔은 “마음을 여는 손잡이는 마음의 안쪽에만 달려있다”라고 했다.
내 마음의 문은 내 쪽에서 먼저 열어야 비로소 상대방과 만날 수 있다.
이 문은 닫기는 쉬워도 열기는 어렵다.
그런데 마음의 문을 닫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 마음문을 닫으면 세상도 나를 향하여 닫히게 된다.
대화를 하다 보면 대화의 문을 닫는 언어가 있고 대화의 문을 여는 사람이 있다.
대화는 서로 이어지는 대화를 해야 관계가 지속된다.
무우 자르듯이 딱 잘라버리면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리므로 더 이상 이어져 갈 수 없게 된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을 보면 항상 냉기가 흐른다.
“됐어! 그러면 뭐해! 전에도 그랬잖아요! 한두 번이야?”
이런 식의 대화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문을 닫아 거는 것과 같다.
대화의 단절의 가장 큰 문제는 막말이다.
막말을 하는 순간 두 사람과의 대화는 단절된다.
두 번째는 자기주장이다.
자기주장만 강조하면 사람들과의 대화가 단절된다.
자주주장만 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기 주장만을 내세우면 파고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절벽을 느낀다.
대화가 단절되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관계의 단절이다.
어느 부부가 부부싸움을 했다.
며칠 동안 마음을 닫고 한마디 대화도 없던 터에 남편이 회사에 일찍 출근해야 되므로 테이블 위에 “여보, 6시에 깨워줘요”라고 쪽지를 올려 놨다.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일어나보니 벌써 아침 10시가 됐다.
화가 나서 부인에게 왜 깨우지 않았냐고 소리를 치자 부인이 손가락질로 침대 머리맡을 가리켰고 그곳에는 메모지가 놓여 있었다.
“여보, 6시예요, 빨리 일어나세요, 늦겠어요.”
그 옆에 또 다른 쪽지에는 “6시 10분이예요, 늦겠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부부싸움 때문에 서로 입이 닫혀버렸다.
서로 통하려면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 말만 외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아라비아에 이런 속담이 있다.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 데는 2-3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도 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힘들고 어려우며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먼저 마음문이 열릴 때 가능하다는 점을 잊지 말자.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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