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대의 예보도 필요 없었다. 가뭄은 3년이 넘게 계속되었다. 차라리 전쟁이 일어나서 큰 변고를 겪는 게 더 나을 수 있었다. 가뭄이 길어져 모든 것이 끝났다.
왕도 백성도 마른 하늘만 쳐다 볼 뿐이다. 비를 위해 이스라엘은 해볼 것은 다 해보았다. 하늘이 분노한 것이다. 하늘의 노여움을 누군가는 풀어야 한다. 적어도 야훼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른 신을 내 앞에 두지 말라고 했다. 야훼는 우상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었다. 우상 금지는 가장 높은 수준의 법이었다. 이 한 가지는 에덴의 선악과처럼 건드리면 안되는 것이었다. 절대 금지다. 전쟁은 언제나 하나님의 극약처방 이었었다. 이해 하지 못할 일이다.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상과 하나님을 혼돈해 하는 것 같다. 절대금지 된 이 문제에 대해 무감각해 가고 있다고 할까? 인생과 종교와 세상에 흡수되어 가는 세대를 본다. 믿음만 남는다고 했으니 우리는 믿음을 일생 지키며 사는 편을 택했었다.
다시 믿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택하는 것이 좋다.그러나 야훼 하나님은 직접 문제를 풀지 않으신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든지 사람들에게 전후 사정을 미리 알게 하신 후에 일을 하신다. 사람들은 듣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것이 옳다라고 늘 말해왔다. 하나님은 이미 우상화 되어 버린 세상을 두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 늘 그 일을 반복하셨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가 엘리야다. 그는 이슬조차 마른 땅을 보면서도 온 나라가 우상으로 뒤 덮였던 북 이스라엘의 아합왕 조차도 안심시킨다. 아합을 책망할 틈조차도 없었다. 하나님이 비를 주신다는 말씀을 주셨기 때문이다. 사환과 함께 산꼭대기에 오른다. 엘리야가 야훼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비는 계속 오지 않았다. 먹고 마실 것조차 없었으니 그에게도 기도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약속을 붙들고 그는 기도를 계속했다. 그는 배고픔으로 기도의 한계에 부딪혔을 것이다. 그때 손바닥 크기의 구름 한 조각이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 그 작은 구름이 응답의 시작인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모든 환경이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 일은 거짓 선지자 450명을 몰살 시킨 다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일 말고도 이스라엘은 7년 가뭄도 있었다. 그 후에도 갈멜산 꼭대기가 마른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전부 우상화 되어 가는 사람들의 반역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늘 우상 속에 있는 듯 한데 그런 일은 성경에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일상이 우상화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이스라엘 하늘에 미사일과 로켓포 수천 발이 불을 뿜었다고 한다. 세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많이 고생하고 있다. 이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다시 세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가장 오랜된 전쟁이다. 협상없는 전쟁을 선언하고 양측이 전면전에 돌입했다. 둘 다 죽는다. 눈만 뜨면 전쟁을 했던 다윗은 분명히 말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이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하나님이 전쟁의 주인이다. 다윗시대만 이스라엘이 나라 다웠었다! 그 후에는 이리 저리 끌려다니다가 좋은 세월 다 보냈었다. 한번도 이스라엘 답지 못했었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전쟁의 원인을 그렇게 이해한다. 이스라엘 다워라! 하마스를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지금의 이스라엘을 아는 사람들 모두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지 힘의 전쟁으로 이겼음을 박수치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평화는 수없는 상처를 받는 것일까? 지금의 이스라엘이 샬롬을 회복하려면 다윗이 했던 것처럼 돌아가야 한다. 적들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에서 다윗 아닌 것 즉, 우상을 먼저 도려 내고 이스라엘 답지 못한 일들을 만들어 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 필요하겠지만 그 배후에는 이스라엘 다움의 영향력이 힘을 발휘하도록 하자는 말이다. 다윗은 우상의 반대편에 있었기 때문에 강한 이스라엘을 가질 수가 있었다. 힘에 있어서나 군대의 용기에 있어서나 그때 만한 때는 없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쉽게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쟁은 또 일어난다. 세계가 달라붙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의 왕조가 영원하리라는 약속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 믿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현재의 전쟁이 이스라엘의 이스라엘 다움을 보장할 수는 없다. 전쟁은 이기고도 지는 경우들이 허다했다. 이 작은 지구는 하룻밤에도 소멸될 수 도 있다는 위기감에 다시 기도의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결론이다. 엘리야는 천기를 분별하고 비를 이스라엘에게 선물로 던지고는 깡마른 그의 몸에 웃옷을 벗어 허리에 동이고, 한걸음에 호렙산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는 왕같은 제사장이었다. 우리도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면 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토록 짓고 싶었던 성전은 나중의 일이 되었었다. 지금의 이스라엘이 예수의 평화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아직도 먼 훗날의 일로 보인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한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먼저 다윗에게 돌아가는 길을 택하라. 예수께서는 말했다. 푸른초장 쉴만한 물가 같은 평화는 내가 주는 평화에서 시작한다고 말씀하셨었다. 이것은 다윗도 엘리야도 이런 흐름을 타고 평화의 일에 참여 했었다고 보는 근거가 된다. 모든 전쟁과 평화의 밑바닥에는 기도 이외에는 이런 류들이 나갈 수 없다는 예수의 가르침이 숨겨져 있는 이유이다. 누가 이 보화를 캐고 예수의 샬롬에 가까이 갈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이 가을에 급한 기도제목이 있다. 예수의 평화를 먼저 구하자.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은 우상화에 빠지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전쟁의 본질은 우상을 치우는 하나님의 일이었었다. 축복을 빈다.
맥알렌제일한인장로교회 이근형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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