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영화 곡성의 명대사가 한국사회에 한 참 동안 메아리를 남겼던 때가 있었다.
어수룩한 시골경찰 종구는 마을에 들어온 외지인을 의심하며 딸 효진에게 그를 만난 적이 있는지를 따져 묻는다.
“아부지 경찰이여. 그짓말허먼 다 알어. 니 그 사람 만난 적 있제? 말혀 봐. 중요헌 문젱께”
추궁하는 경찰 아빠를 똘똘한 딸이 쏘아붙이듯 날카롭게 쏘아보며 말한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고 소리치는 효진의 낯선 모습을 보는 사람들에게 메아리로 남았다.
경찰까지 하는 아빠의 생각이나 행동이 어린 딸이 보기에도 어리숙하고 못마땅하게 보인 것이다.
이 대사는 후에 많은 광고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차용되면서 한 세대를 특징짓는 “세태어”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뭣이 중헌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정말 뭣이 중한 지를 모르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은 진짜로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우리 인생에서 뭐가 제일 중요할까?
신앙생활에서도 “뭣이 중헌디?”를 늘 생각해봐야 하지않을까?
때때로 살면서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뭣이 더 중할까?를 고민하면서 그 답을 찾고자 해야 하지 않을까?
지혜로운 삶은 중요한 것을 중요한 우선순위에 놓는 것이다.
중요한 것보다 중요하지 않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면 어떻게 될까?
중요하지 않는 걸 중요한 위치에 두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남들이 중요하다는 것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뭘 중요한지 정하고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외식(外食)하는 자”라고 부른다.
“외식”(휘포크리테스)의 본래의 뜻은 “대답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는데, 나중에는 “가면을 쓰고 본래의 얼굴을 가린 체 미리 정해진 각본대로 말하는 가면배우”라는 뜻이 되었다.
결국 자신의 얼굴을 감춘 체 거짓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예수님이 지적하시는 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겉으로는 모든 율법의 명령들을 다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매우 경건한 사람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얘기할 때 기독교적인 언어들을 사용했다.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하늘의 복과 교회의 신앙고백들에 대해 말했고, 그 내용은 그가 이끄는 새정부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론에서 늘 경건한 이야기들을 나눠주었고, 특히 기독교 언론에는 더욱 그렇게 했다.
또한 너무 많이 읽어서 다 너덜너덜해진 자기 성경을 보여주며, “바로 이 책으로부터 제가 힘과 지혜를 얻어서 나라를 위해 일하게 되었다.”고 자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바로 이 사람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위대한 지도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이 사람이 누구였는가?
바로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겉으로 아주 완벽한 종교적인 사람이었다.
위선자의 대표였다.
그러나 그의 속은 하나님과 거리가 너무나 먼 사람이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겉과 속이 다르면 이런 무서운 사람이 되기 쉽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205-5578
www.houstonnewlife.org




![[토요와이드] 이 대통령, 美빅테크 CEO 회동…여야 내홍 격화 5 [토요와이드] 이 대통령, 美빅테크 CEO 회동…여야 내홍 격화](https://kjhou.com/wp-content/uploads/2026/07/Lee-0725-120x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