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치유와 감사
고난이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신앙에 큰 도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만나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 (살전 5:18).”고 말합니다. 우리는 기쁜 일이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고난을 당할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고난은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만들고, 병든 영혼을 치료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 히스기야는 고난을 통해 감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중년에 음부의 문에 들어가고 여년(나머지 세월)을 빼앗기게 되리라 하였도다.” (10절) 히스기야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유다의 왕이 되어서 15년 동안 열심히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런 그에게 40세에 죽을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그 병으로 히스기야는 자기의 처지를 처절히 한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내가 다시는” 세 번이나 반복하며 하나님과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을 한탄했습니다. (11절) “나의 명이 조석 간에 마치리로다.” (13) 하고 두 번이나 강조하며 한창 때에 죽게 된 것을 서러워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순간에 히스기야는 한 가닥의 희망에 자기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14절) “나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다. 나는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 보았다. 주님. 저는 괴롭습니다. 이 고통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히스기야는 살아날 마지막 방법으로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망가진 상태를 수선할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기도는 우주를 움직이는 무진장한 힘에 자신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보통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얼굴을 벽으로 향한 채 사생결단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2절) 또한 그는 울면서 눈이 희미해지고 지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서원기도까지 했습니다. “내가 종신토록 각근(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히 행하리이다.” (15절) 죽을 때까지 겸손히 열심히 부지런히 일하겠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을 일하시게 만듭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기도에 반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15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5,6절)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해서 수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성을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까지 덤으로 허락해 주셨다. 그리고 약속의 신실함을 나타내시려고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 물러가게 하는 증거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증거를 주시면서 덤까지 주시는 선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1. 감사는 깨닫는 것입니다. (17절)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히스기야는 고통이 자신에게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병을 통해 혈액이 강해지듯이 고통을 통해서 영혼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혼을 강하게 하시려고 때로 고통을 허락하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삶을 불행하게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은 행복의 전주곡이 될 수 있습니다. 고통을 자꾸 피하려고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럴수록 고통은 더 빨리, 그리고 크게 다가옵니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당당히 직면해야 마음의 상처도 적습니다. 결국 고통의 뚜껑이 열리면 고통 안엔 진실도 숨어 있고, 자유도 숨어 있고, 삶의 지혜도 숨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허락하실 때 자유와 진실과 삶의 지혜라는 열매를 함께 준비해 두십니다. 하나님은 선한 열매를 주려고 때로 어려운 과정도 허락하십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의 고통이 하나님의 선한 목적에서 주어졌음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의 ‘감사한다’는 ‘thank’란 말은 ‘생각한다’는 ‘think’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깊이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받게 된 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지낼 거처가 있는 것도 감사하고, 두 눈이 정상인 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그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2. 감사는 산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음부가 주께 사례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날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18,19절) 죽은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살았으나 감사를 모르는 자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 현대인은 그저 살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기도와 감사와 사랑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쁘고 힘든 현실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감사가 없으면 영혼은 점점 죽지만 범사에 감사하면 영혼은 점점 살아납니다.
3. 감사는 지속적이어야 합니다. (20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이다.” 히스기야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감사 없이는 살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평생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자로 살아가겠다고 고백합니다. 그처럼 우리는 순간적으로만 감사하지 말고 꾸준히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1년을 살펴보십시오. 범사에 감사하기보다는 수시로 원망을 했던 모습이 있다면 이제 그런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했는데 이제 우리는 “내 사전에는 원망이 없다”라고 말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고 때로 고난이 있어도 감사하십시오. 고난은 진리와 축복을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뜨리는 도구이고, 병든 자아를 고치는 쓴 양약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있으면 바로 이런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주님! 이 고난에도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가 없는 심령은 채울 길이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심령은 돈이 있어도 불평이고 돈이 없어도 불평입니다. 관심을 주어도 불평이고 관심이 없어도 불평입니다.
같은 물이라도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고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됩니다. 똑같은 사건에서 감사가 없는 심령은 불평하지만 감사가 있는 심령은 감사합니다. 우리는 감사를 연습해야 합니다. 환경이 감사의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사할 때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나간 삶을 돌아 봅시다. 하나님은 결코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기에 우리가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몸과 마음과 물질과 시간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항상 감사함으로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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