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2)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3)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1-4)
75세에 하나님이 아브람을 부르시고 아브람은 아무런 것도 묻지 않고 순종합니다. 아브람의 믿음입니다. 75년 살았던 터전을 떠나 이사를 하라고 합니다. 정말로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그러나 순수하게 그냥 믿고 순종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을 긍정적인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에는 긍정적인 믿음과 부정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부정적인 믿음이란 순종하면서도 이유나 변명을 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즉 억지로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은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긍정적인 말을 합니다. 그리고 행동합니다. 바로 아브라함이 그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입니다.
신시내티에 있는 포록터 갬블 비누회사를 설립한 할레이 프록터라는 사람은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어려워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십일조를 철저히 드리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규정된 시간보다 더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비누가 잘못 만들어졌습니다. 물에 비누가 둥둥 뜨는 것입니다. 이 직원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수 천 개의 비누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판이 되고 말았습니다. 프록터는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묵상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언뜻 머릿속에 목욕탕에서 물에 뜨는 비누가 휠씬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났습니다. 그래서 이 잘못 만들어진 비누에 “아이보리”라는 이름을 붙여서 시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 비누는 나오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었고 프록터는 거부가 되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니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있습니다. 비록 감옥이지만 만족하고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있으면서도 복음 전함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상황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빌 1:12)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2절)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만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특급비밀입니다.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이 바울의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신학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입니다” 바울의 신학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 안에서 (in Christ)”의 신학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구원이 있습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사역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형편이든지 어떤 상황이든지 그런 것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10)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할려고 하니 문제입니다. 그래서 실패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스룹바벨입니다. 바벨론에서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스룹바벨은 총독으로써 의욕이 넘쳐났습니다. 불타버린 성전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8년 동안 의도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결국엔 하나님이 역사하시니 4년 만에 완공이 됩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슥 4:6-7) 바울은 육체의 가시인 자신의 질병 문제로 고심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약할 때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러 있어서 도리어 강해진다는 긍정적인 면을 본 것입니다. 그래서 도리어 육체의 가시를 부둥켜 안고 즐거워하며 강해졌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니까 바울에게 있어서 육체의 가시는 그에게 도리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가져다 준 것 입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9). 긍정적인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 이런 말들입니다. “문제없습니다. 훌륭합니다. 제가 보기엔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당신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말들입니다. 많이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망가진 인생이란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 인생이 있을 뿐입니다.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며 미술 평론가이며 사회개혁자인 존 러스킨은 어느 날 “값비싼 손수건인데 잉크자국으로 얼룩져 못쓰게 되었습니다” 라고 말하는 부인을 만났습니다.러스킨은 말없이 그 손수건을 받아 얼룩 옆에 세련되고 우아한 무늬를 함께 그려 넣었습니다.그러자 “얼룩져 못쓰게 된 손수건”은 멋진 예술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부인은 탄복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러스킨은 스스로 깨달았다고 합니다. 못 쓰게 된 손수건에 그림을 그려 넣으니 아름다운 예술품이 된 것처럼 비록 인생이 망가졌다고 해도 하나님이 손을 쓰면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닿으면 망가진 인생이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손길이 닿치 않아서 일 뿐입니다.
어떤 믿음을 가지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지만, 부정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행합니다. 사도 바울이 행복한 이유는 그가 긍정적인 믿음을 갖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삼상 16:7)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울의 순종에는 이유가 많았습니다.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8)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 (9) 여호와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임하니라 가라사대.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8-10) 그래서 하나님이 사울 왕을 버리신 것입니다. 순종하되 반쪽짜리 순종. 순종하되 이유가 많은 순종입니다. 이런 믿음을 부정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시어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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