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인디언의 몰락은 잘못된 선택 잘못된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미국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을 때 프랑스 편을 든 것이 큰 화근이였습니다. 그 전쟁에서 영국이 이겼기 때문입니다. 이 때 부터 인디언에게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과 영국의 전쟁에서도 잘못된 선택을 합니다. 지난번에 영국편을 들지 않은 것이 큰 화근이 된 것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영국편을 듭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미국이 이겼습니다. 두 번의 선택 모두 잘못된 선택이였습니다. 인디언은 미국의 엄청난 핍박을 받게 됩니다. 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은 “인디언 제거법(The Indian Removal Act)”을 만들어 그들을 삶의 터전에서 강제로 내쫓았습니다. 길을 잘못 선택하여 잘못된 길을 가다보면 이런 엄청난 불행이 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어떤 길인기요?
예수님께서 자신에 대해 설명해 주실 때 선언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쉽게 말해 ‘나는 무엇이고 무엇이다’는 식입니다. 그런 표현이 요한복음에 일곱 번 나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6:35)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나는 양의 문이다. (10:7-9)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14)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나는 포도나무다. (15:1)
1. 내가 길이다
“내가 길이요…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살아가면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잘된 길인지 잘못된 길인지를 잘 판단하고 걸어가야 합니다.
다윗은? 많은 위기 속에서 걸어가야 길을 잘 선택한 사람이였습니다. 사울 왕이 굴속에 들어왔 때 죽여야 하느냐 살려 주어야 하느냐?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습니다. 나발로 인하여 극히 분노하여 죽이러 가고 있었을 때 죽여야 하느냐 살려야 하느냐? 살려 줍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싸워야 하느냐 피해야 하느냐? 피했습니다. 하나같이 어려운 결정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때마다 기가 막히게 살 길을 택했습니다. 다윗은 길이 훤히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왕은 결국 자기 칼에 찔려 죽습니다. 나발은 열흘쯤 지나서 주님께서 나발을 치시니 그가 죽었다. (삼상 25:38)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쳤다. 그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었다. 그 노새가 큰 향엽나무의 얽힌 가지들 밑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향엽나무에 휘감기면서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게 되고 타고 가던 노새는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삼하 18:9) 다윗은 어떻게 길을 보는 눈이 열렸을까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네가 가야 할 길을 내가 너에게 지시하고 가르쳐 주마. 너를 눈여겨 보며 너의 조언자가 되어 주겠다.” (시 32:8) 이것이 다윗이 길을 훤히 내다 보는 비결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롬 12:19)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신다. (시 23:1-2) 하나님은 다윗을 평안한 길로 인도하시려 한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 했습니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길로 인도하실 때도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다윗은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길이 되시는 예수님. 광야 40년을 상상해 보십시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은 딘순한 기적의 일부가 아닙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하심이 없었으면 죽었습니다. 운전하다 보면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싸인판은 잘 보고 왔어야 하는데 잠깐 딴 생각을 하다가 싸인을 못 보면 길을 잃어버립니다. 방황하는 인생이 되는 꼴입니다. 어떤 사람은 목적지가 없이 무작정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딜 가느냐고 물으면 그냥 간다는 것입니다. 목적지가 없어요.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잠 14:12)
2. 나는 진리다
참된 진리는 복잡하거나 여러 갈래가 아닙니다. 오직 한 길 뿐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이 진리는 곧 예수님입니다. 진리의 반대는 거짓, 불의, 불법입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엡 4:18) 진리가 떠나면 총명은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의 흐트러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이 떠나는 것입니다. “나의 깨닫는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 (전 7:29)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사람을 사기꾼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되어 갔습니다.
3. 나는 생명이다
생명이란 삶의 근원이자 에너지입니다. 생명은 변화와 부활과 거듭남을 잉태해 줍니다. 생명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 정의할 때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고 하고 혹은 ‘하나님은 생명이시다’라고 정의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에 생명이 있고, 마귀가 있는 곳에 죽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죽음이고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 길을 비춰주는 진리이며, 그 진리 안에 생명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진리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만약 태양이 두 개라면 지구는 매우 뜨거워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가 두 분이라면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하나보다 둘이라서 복잡하고 불편한 것이 더 많습니다. 진정한 사랑, 구원, 자유도 하나뿐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뿐인 것입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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