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의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사탄이 주는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모세는 담대한 믿음으로 살아간 믿음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모세의 모습을 통해서 담대함을 가지시기를 축복합니다.
1.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상)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성경은 모세가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모세가 애굽을 떠난 것을 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가? 모세가 애굽에 살았을 경우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의 신분입니다. 그 신분으로 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그런 자리를 버리고 애굽을 떠났습니까? ‘난 하나님의 자녀이지 공주의 아들이 아니다. 애굽에서 행복을 누리기 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 참된 보화는 세상에서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이다’ (24,25,26절) 하루는 물오리들이 떼를 지어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마리의 마음에 꾀가 생겼습니다. 배도 고프고 날개도 아팠습니다. 그래서 다른 동료들 몰래 슬그머니 농가의 지붕 위에 살짝 내려앉았습니다. 그 농가의 마당에는 때마침 자기와 비슷하게 생긴 집오리들이 집주인인 농부가 주는 모이를 맛있게 받아먹고 있었습니다. 물오리가 가만히 살펴보니까 집오리들은 날지를 않습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먹이를 찾아야 할 필요가 없어 보였습니다. 물오리는 집오리들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지붕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리고 집오리들 틈 속에 섞였습니다. 마치 자기도 집오리인 것처럼 행세를 하면서 몇 개월 동안 같이 어울려 살았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물오리 마음속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데, 이제는 내 갈 길로 가야지’ 물오리는 날개를 펴고 공중으로 날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몸이 비대해져 있었고, 몇 개월 동안 날개 운동을 하지 않아서 날개에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뛰어오르다가 다시금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농부는 그 물오리를 잡아다가 맛있게 요리를 해 먹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세상에 사는 것이 재미있다고 세상 낙에 빠져 살면 믿음을 잊어버립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믿음 생활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예배도 빠지다 보면 예배드리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기도생활도 안하다 보면 기도하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봉사도 헌신도 계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떠나야 할 것을 떠나는 것이 믿음입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포기해야 할 것을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모세는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 했습니다.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모세가 처음부터 이렇게 담대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왕궁에서 살던 모세는 40세가 되었을 때 자기 동족을 돌아 볼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역하는 곳에 나갔다가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 때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격분한 모세는 그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파 묻었습니다. 다음날에 떠 나가보니 이번엔 같은 히브리 사람끼리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동포끼리 싸우느냐 하니 우리가 언제 당신을 우리의 법관으로 삼았느냐? 어제 애굽사람을 죽인 것 같이 나도 죽이려 하느냐? 어제 사람을 죽인 것이 탄로가 나자 모세는 두려워서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자기 백성을 구하고자 했던 모세의 비전과 열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처음 모세의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모세도 사람을 두려워했었습니다. 성경은 모세만이 아니라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거의 다 겁이 많은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하마터면 아내를 이방인들에게 빼앗길뻔 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애굽 왕 바로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했습니다. 그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담대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3. 모세는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모세가 애굽에서 살 때 40년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했던 자였습니다. 세상의 부귀, 영화, 모든 권세를 한 몸에 누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 40년 동안의 삶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초라한 목동의 삶을 살았습니다. 고달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그 모든 훈련을 어떻게 잘 참아냈습니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지키신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다!’ 모세에게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우리의 삶이 끝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광야 한가운데 놓여 있는 것 같습니까? 광야는 축복의 땅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크게, 더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광야의 삶을 통해서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가졌던 믿음을 가지고 그 어떠한 환난 앞에서도 요동하지 말고 끝까지 잘 참아 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우리도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아멘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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