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돌멩이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다면 당신은 내일 기쁘면서 또 후회스러울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길에 떨어진 돌멩이 몇개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음날 주머니에 넣어 보니 그 돌멩이들이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같은 보석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어제의 그 목소리처럼 기쁘면서 후회스러웠습니다. 기쁜 것은 그 돌멩이들을 가져 온 것이고, 후회스러운 것은 좀 더 많이 가져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배움이란 이와 같습니다. 배울 때는 잘 모르지만 나중에야 그 즐거움을 알게 되고,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배울 것이 많습니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은 바울에게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기쁨이 가득하도록 잘 배워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1. 자랑하지 아니하는 바울 (16절)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그리스의 대부호 알치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 앞에서 자기가 소유한 토지가 많음을 자랑하며 한바탕 늘어놓았습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조용히 세계지도를 펴놓으며 말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어느 정도인가 여기에 그림으로 표시 해 보시요” 그러자 알치비아데스는 당황하며 “그런 농담은 마시오. 내 토지가 아무리 많기로서니 세계지도에 그릴 수가 있겠습니까?” 그때 소크라테스는 점잖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토지가 지도에도 표시할 수 없다면 그까짓 토지를 갖고 있다고 해서 그토록 자랑할 것까지는 없지 않습니까?”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16절) 바울은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입니다. 본래 출신 성분이 남다른 사람입니다. 경건한 가문 출신으로 그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지키며 성장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까지 유학을 와서 당시 명문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도 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로마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예수를 믿게 된 후에도 자랑거리가 남다릅니다.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간 직접 예수님께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 (갈 1:17) 게다가 누구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신비한 영적 체험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잊어버렸다고 했습니다. 복음 전한 자랑거리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자기자랑을 삼가 했습니다.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입니다. 여기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의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모습입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은 결코 자기자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2. 바울은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18절)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박사) 이 책에 의하면 부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 즉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결혼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것이 오히려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는 여자를 향해 “나를 이해하고 나를 닮으라!” 하고 여자도 남자에게 “왜 여자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느냐?”라며 싸웁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른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있으면 의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권리에 대한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권리보다 의무를 더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나의 것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권리를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입장보다 다른 이의 입장을 더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권리가 있지만 권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많은 수고를 했어도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회를 설립했지만 설립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최고 수준의 영적 지도자이지만 지도자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공동체보다 자신을 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권리주장의 소리가 커지면 그 소리들이 충돌하여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어야 합니다. 권리를 포기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것이 나도 살고 교회도 살리는 길이 됨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대신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남다른 주의 종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비록 자신의 권리를 버렸어도 하나님께서 그 권위를 세워주신 모습이야말로 진정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의 모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바울을 억지로 하지 않았습니다 (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교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피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내가 하겠습니다” 하는 자세가 필요할 때입니다. 무거운 짐은 다른 사람에게 지우고 난 편히 가겠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 16:24)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주님께 지우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지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십자가를 주님께 지우지 않고 자신이 지는 성도가 성숙한 성도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우지 않고 자기가 지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바울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할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종이 되는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바로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더 많은 것으로 드리고 싶어 남보다 앞장서고 자원하여 헌신하는 것을 영광으로 아는 사람이 바로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재능도 주셨고, 시간도 주셨고, 건강도 주셨고, 일할 기회도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깨닫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설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자원하는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하는 태도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랑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권리 주장도 삼가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에게서 아름다운 모습을 배워 마지막 시대에 바른 신앙의 모습을 보이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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