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아빠가 아들과 함께 재래시장을 지나가다가 김이 모락모락나는 가게에서 찐빵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옛날 중고등학교 시절에 친구들과 먹었던 추억이 생각이 났다.
찐빵 5개를 샀다.
그 중에 하나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주고 나머지 4개는 아빠가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다.
“아들아 배부르지?”
그러자 아들이 말하기를 “한 개 먹은 내가 배가 부르면 4개먹은 사람은 배 터졌겠네” 하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우습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먹고 싶은 것만 생각했다.
정말 아들을 사랑하고 한참 성장하는 아들이 먹고 싶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자기는 1개만 먹고 아들에게 4개를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들에게 “아들아 배부르지?”라고 했을 때 아들은 “나는 4개나 먹어서 배가 부른데 아빠는 한 개만 잡수셔서 배가 고파서 어떡해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럴 때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난 것이다.
권위란 행사하고 부리는 것이 아니라 권위란 지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권위를 지키려면 겸손하고 배려하고 희생해야 한다.
그래야 나의 권위가 살아 있게 된다.
이 시대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권위의 실종라고 할 수 있다.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가 사라지고 권세만 부리려고 하면 자녀들이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직장에서 상사의 권위대신 권세만 누리려고 하면 회사원들이 상사의 권위에 순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에서도 지도자들이 권위대신 권세만 부리려고 한다면 최고 지도자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로 합당한 권위를 갖지 못한 지도층에게 문제가 있다.
권위대신 권세자가 되려 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인정해야 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과학만능의 시대에 신적존재를 믿기가 더욱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 권위의 대상을 알지 못 한다.
세번째로는 너도나도 개인제일주의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자기중심, 자기주장, 자기의를 주장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자기자신이 신이 되어버렸다.
그 결과 더욱 위험한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권위를 주시는 분은 누구인가?
하나님은 모든 권위를 주시고, 지금도 권위를 유지시켜서 인류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방식 가운데 하나이다.
권위가 책임과 의무라면 권세는 타인에게 책임과 의무를 전가시키는 일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항상 “나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을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라고 한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John Calvin)도 이것을 책상 앞에 써놓고 항상 되새기며 살았다고 한다.
“코람데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그는 “내가 예배를 드릴 때나 나가서 일을 할 때나 내가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도 하나님 앞에 있다.”고 고백했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누구와 대화를 하든지, 일을 하든지, 어디를 운전하고 가든지, 혼자 방에 있든지 상관없이 “코람데오”, 나는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이다.
송영일 목사 (Y Edward Song, Th.M, D.Min)
케이티 새생명교회 담임
newlife0688@gmail.com
(832) 205-5578
www.houstonnewli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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