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레비 스트라우스(Levi Strauss)의 이야기입니다. 뉴욕에서 직물 판매하는 일을 시작하였는데 군납업자가 10만개 분량의 대형 천막 천을 군부대에 납품하는 일을 제의했습니다. 레비는 은행 대출을 받아 공장과 직공을 늘리고 생산에 몰두하여 주문량을 모두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군납의 길이 막히고 애써 제작한 천막 천들을 폐기 처분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파산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어느 날 식당에 갔는데 광산의 광부들이 헤어진 바지를 꿰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무심코 중얼거렸습니다. “바지 천이 많이 닳았네. 질긴 천막천을 사용하면 쉽게 헤어지지 않을텐데…”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천막 천을 잘라 청바지를 만들었습니다. 청바지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습니다. 천막천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리바이스 청바지로 탄생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였습니다. 레비 스트라우스에게 위기는 기회였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 어떤 사람은 실망하며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창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됩니다. 위기가 고통이 기회가 됩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믿음이 희망 사항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참된 믿음은 여리고 장벽도 무너지게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됩니다. 믿음의 행동은 언제나 쌍둥이처럼 동행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역사(일, 행동) 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행동(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으로만 믿는 믿음, 입술로만 말하는 믿음 이런 믿음은 열매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행함으로 믿음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습니다. 열매 없는 믿음 생활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어떠합니까? 말과 생각만의 믿음입니까? 아니면 실천하는 믿음입니까?
오늘 하나님께서는 야고보를 통해서 성도의 실천적 신앙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야고보서는 단지 행함만을 강조하는 서신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이 살아 있고 진정한 믿음인가 진단하는 영적 클리닉의 역할을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죽은 믿음을 붙잡고 스스로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면합니다.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18)
1.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허드슨 테일러 (James Hudson Taylor)는 중국 내지 선교회를 조직하고 중국인처럼 살았던 선교사입니다. 그는 선교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중국인의 옷을 입었고, 중국인처럼 머리를 깎았고, 중국말을 하고, 한문을 쓰고, 한문으로 성경을 번역하고, 중국인으로 살았습니다. 테일러가 선교사들을 면접할 때였습니다. “왜 선교사로 나가려고 하느냐?”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 지상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드슨 테일러가 듣고 싶은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당신들은 선교사로 나가면 핍박을 받기도 하고, 또 죽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이 가진 그 정도의 믿음으로는 낙심하고 되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미쳤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빚을 졌기 때문에 갚아야 합니다. 주를 향한 믿음이 있다면 주의 사랑에 붙잡혔다는 생각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믿음은 사랑에 보답하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감당하는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 대신 죽으신 주님처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할 때 주님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믿음이 되시기 축복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6절)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랑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믿음의 실천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 필요를 채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이 있다고 말하면서 고통 받는 형제들을 보고 가까이 가기는 커녕 오히려 모른척하거나 멀리하고 입으로만 동정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모습을 통해 살아있는 믿음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2. 행동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955년 미국 오레곤주 유니게 신문에 광고가 실렸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종교 집회가 열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마을에 사는 부부가 광고를 보고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영화 한 편을 보았는데, 6·25 사변으로 생긴 한국 고아들의 실상을 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월드 비전의 회장 밥 피어스가 집회를 인도하면서 청중들에게 고아들을 돕자고 호소했습니다. 부부는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남편은 혼자 한국에 가서 고아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아내는 깜짝 놀랐습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무려 여덟 명을 데려왔기 때문입니다. 농부였던 그들에게는 많은 아이들을 키울 만한 능력도 없었거니와 당시 미국 법으로는 입양할 때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마침내 국회 승인을 얻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흔하지 않은 이 사건은 신문을 통하여 고아들의 사진과 함께 미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방방곡곡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편지가 왔고 남편은 더 많은 고아들을 데려왔습니다. 비행기가 오레곤에 도착하자 고아들을 양자로 삼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였습니다. 이 부부는 바로 홀트아동복지회의 해리 홀트(Harry Holt) 부부입니다. 여덟 명의 고아들을 데리고 어렵게 시작한 고아 사업이 세계적인 홀트아동복지회가 되었습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참된 믿음으로 증명됩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18절) 믿음과 행동은 언제나 쌍둥이처럼 동행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런 역사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은 역사(일, 행동) 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는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으로만 믿는 믿음, 입술로만 말하는 믿음 이런 믿음은 열매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행함으로 믿음의 열매가 맺혀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했습니다. 열매 없는 믿음생활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입으로 고백하는 믿음이 아니라 행함을 통해 나타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행동이 따르는 온전한 믿음이 온전한 축복의 전제 조건입니다. 하나님이 믿음과 함께 행동을 요구하시는 까닭은 더 온전한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행동이 따르는 믿음을 요구할 때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전한 복을 구하면서 순종은 부분적으로 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순종하는 행동을 통해 축복의 그릇을 넓히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동으로 그 증거가 보여야 합니다.
류복현 목사 (킬린한인침례교회 담임목사) 254-289-8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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